[횡설수설]김충식/고문의 죄값

  • 입력 1999년 9월 29일 18시 40분


사람을 못살게 구는 고문의 역사는 너무 길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숱한 고문이 자행되었다. 죄를 캔다는 명목으로, 혹은 적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이 가학적 광기(狂氣)의 실험에 희생된 수를 누가 헤아릴 수 있을 것인가.

▽금세기 두차례의 세계대전은 엄청난 고문 피해자를 낳았다. 마침내 48년 유엔 총회에서 고문금지 협약이 채택되었다. 경찰 군인같은 공무원 등이 정보나 자백을 얻어내기 위해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가 고문이라고 규정했다. 유엔은 협약에 가입한 나라건 아니건 고문한 자를 처벌할 수 있게 했다. 그래도 후진국이나 제삼세계에서 고문 피해 호소가 끊이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치적으로 어두운 시절 고문 피해자가 많았다. 87년 경찰의 밀실 고문으로 박종철군이 숨진 사건이나 김근태씨(현 국회의원)고문 케이스 등이 그것이다. 이 피해자와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국가는 3억원에 이르는 돈을 물어야 했다. 경찰 공무원들이 저지른 고문과 그 은폐조작이라는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국민 세금으로 해결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국가가 다시 강민창 전치안본부장 등 고문 경찰관계자 13명을 상대로 이른바 구상권(求償權)소송을 시작했다. 13명의 불법행위에 대한 피해를 나랏돈으로 배상했으니 이제 그 돈을 당시 경관들로부터 받아내겠다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가혹하지 않느냐는 반응이 나올 법하다. 공무원들의 사기는 어떻게 할거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적법절차를 짓밟고 고문같은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용납해야 하던 시대는 지났다.

〈김충식 논설위원〉sear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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