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밀레니엄/베트남戰]통일 이후의 베트남

  • 입력 1999년 9월 22일 17시 43분


역사의 아이러니가 이런 걸까.

75년 통일 이후 베트남이 걸어간 길을 보면 이런 자문을 해보게 된다.

전쟁에 승리한 쪽은 빈곤에 시달리고 패배한 측은 여전히 세계의 슈퍼파워로 군림하고 있다. 베트남은 ‘20세기의 로마’라는 미국을 꺾고도 100만명에 달하는 보트피플을 만들어내 세계로부터 동정받는 나라가 됐다. 오히려 전쟁의 가해자였던 미국인들을 불러 전쟁을 상품화해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고 경제엠바고를 풀어달라고 사정을 한다.

베트남에 한국군대 파견을 결정한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은 베트남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외국 지도자 중 한 명이 됐고 한국은 가장 배우고 싶은 나라가 돼 있다.

이런 아이러니는 베트남이 통일의 방법론으로 택한 사회주의가 가진 스스로의 모순 때문이기도 하다. 종전후 베트남 사람들은 “통일이 됐으니 이제 모든 국민이 잘사는 시대가 왔다”고 좋아했다. 그러나 전쟁보다 더욱 처참한 상황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연중 이모작이 가능해 쌀이 부족한 적이 없던 나라에서 수십만명이 굶어 죽는 기아상태가 계속됐다. 또 미국과의 전쟁이후 캄보디아 중국과도 전쟁을 벌여 경제상황은 더욱 악화돼갔다.

결국 86년 ‘도이모이(개혁개방)’ 조치를 취해 농촌에 일부 사유제를 도입하고 외국자본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지 3년이 지나서야 ‘기아’에서 해방됐고 세계 제3위의 쌀수출국으로 변신했다.

이후 베트남은 매년 6∼9%의 경제성장을 기록하면서 90년대 들어서는 ‘떠오르는 용’으로까지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개혁속도를 늦추고 있다. 때문에 개방을 환영하는 사람, 특히 남베트남 출신들은 “12억 인구의 중국도 개혁개방을 가속화하는 데 인구도 적은 우리가 속도를 조절할 여유가 어디 있느냐”며 불만에 가득차 있다. 98년말 기준으로 베트남의 1인당 국민소득은 128달러, 수출은 80억달러. 1인당 국민소득이 1500달러에 가까운 중국과는 커다란 격차가 있는 셈.

이에 대해 베트남의 한 관리는 “베트남에서 중국의 경제특구처럼 과감한 개방을 할 곳은 호치민(구 사이공)밖에 없는데 남북간의 빈부격차가 심각한 베트남에서 호치민만의 발전은 국가의 존립이 흔들릴 정도로 심각한 문제”라고 털어놓는다. 사실 수도 하노이와 호치민은 한국의 ‘서울’과 ‘평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양쪽의 경제격차는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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