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규철/'한반도 아마겟돈'

  • 입력 1999년 8월 24일 18시 36분


내각제개헌논란에 이어 신당창당으로 어수선한 각 정파가 다시 ‘옷로비’청문회에 온통 빠져있는동안 바깥세상은 소리없이 무섭게 변하고 있다. 예사롭지 않은 먹구름이 한반도주변에 몰려드는데도 어느 누구도 크게 신경쓰는 기색이 없다. 이미 동북아지역의 ‘힘의 균형’은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도 불투명하다. 북한미사일을 포함한 한반도상황은 물론이고 특히 일본의 우경화(右傾化)움직임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 기존 판도에 변화

최근 미사일발사훈련을 벌인 중국이나 대만의 최근 동향도 이러한 변화와 무관치 않다. 이러한 일련의 미묘한 정세변화는 유라시아대륙을 둘러싼 세계적인 전략이 크게 바뀔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꼭 그렇게 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일제(日帝)가 한반도를 강점하던 100년전 약육강식(弱肉强食)의 국제환경과 닮아 간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 무엇하고 있는가. 정치권과 정부가 보이고 있는 무관심은 무력증에 가깝다.

5월 일본이 만든 ‘미일방위협력지침관련법’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미군을 앞세워 일본의 군사활동범위를 넓힌다는 것이 본심이다. 그들이 지향하는 목표는 강한 일본, 군사적 재무장이다. 일본정부가 ‘이빨없는 공군’이란 항공자위대에 공중급유시설을 도입하고 공격무기를 장착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중이라는 외신보도도 있다. 최근 만난 한 일본관리도 이렇게 말했다.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역할과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무엇보다도 경제회생을 위해서다. 현행 평화헌법으로는 일본경제가 더이상 발전할 수 없다. 이점 많은 일본인이 공감하고 있다.” 일본의 변신은 오랜 준비를 거친 것이며 북한미사일 때문만은 아니다. 다만 북한미사일이 일본여론을 집약시키는데 좋은 빌미를 준 것은 분명하다. 힘을 얻은 일본정부는 북한이 미사일발사를 강행할 경우 한해 6억달러에서 10억달러에 이르는 조총련의 대북송금중단까지 공언했고 북한은 아태(亞太)지역의 실질적 위협은 북한이 아니라 군사대국이 되려는 일본이라고 공박했다.

그런데 문제는‘우경화 일본’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냉전종식후 달러(경제력) B2(군사력) 펜티엄Ⅲ칩(첨단기술력)이 상징하는 막강한 힘을 지닌 미국의 유일초강대국 지위가 분명해졌고 싫든 좋든 세계질서가 형성돼왔다. 국제정치학자들은 미국 다음으로 세계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Geostrategic Players)로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인도 5국을 꼽는다. 그 다음이 영국 일본 인도네시아 3국이다. 그런데 일본이 현위치에서 뛰쳐나간다면 세력판도에 중대한 연쇄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더욱이 지정학적으로 유사시 파장의 중심지역(Geopolitical Pivots)으로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잔 한국 터키 이란 5곳이 꼽힌다. 따라서 한국과 인접한 일본의 ‘전략적 지위격상’은 심각한 경쟁을 유발할 수 있다. 당장 남북한―미국―일본―중국―러시아로 이어지는 6각구도에서 일본의 축(軸)이 강해질때 기존의 6각형은 일그러질 수밖에 없고 ‘불안한 6각구도’가 되고 만다. 해당국가의 이해관계가 예전과 달리 더욱 첨예해질 것도 뻔하다. 여기에 북한미사일까지 더 불거진다면 그땐 바로 한반도의 ‘아마겟돈’상황을 뜻한다. 결국 반대만 외친다고 될 일은 아닌 것 같다. 주변국과의 관계를 정교하게 이끌어 나갈 외교전략수립이 더 현실적이며 시급한 과제다. 중국이 일본군국주의 부활을 견제하자고 협력을 제안해 온다면, 미국이 일본과의 긴밀한 협력체제를 강권한다면, 또한 일본이 지역안보유지 명분을 내세워 갖가지 군사협력을 제의해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 정교한 외교술 필요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아낼 수 있는가, 우리 선택은 어느것도 쉽지않다. 한국해군은 최근 일본해상자위대와 함께 해난구조훈련을 실시했다. 명분은 그럴듯하지만 장기전략이 명백히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정쩡하게 끼어든 감이 없지않다. 파트너십만 덕담삼아 나누다가는 자칫 일본군사화의 들러리역만 하는 경우도 염두에 둬야 한다.

1905년 미육군장관 태프트와 일본총리 가쓰라 다로(桂太郎)는 일본의 조선지배를 인정하는 밀약을 맺었다. 영국 러시아도 유사한 조치를 취했다. 자국이익에 따라 국제사회는 지금도 그렇게 냉정해 질 수 있다. 새로운 세기를 지난 세기처럼 눈감고 맞을 수는 없지 않는가.

최규철<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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