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임연철/望祭가 헛일 됐으면

  • 입력 1999년 8월 15일 19시 43분


벌써 5년 전 사건이지만 6·25당시 포로로 잡혔다 43년 만에 북한을 탈출해 귀환한 조창호(趙昌浩)씨의 스토리는 모든 것이 감동적이었다.

그 중에서도 전역식 하루 전날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영현봉안관에 새겨져 있는 자신의 위패를 검은 테이프로 가리는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봉안된 위패 위에 손수 검은 테이프를 붙임으로써 ‘돌아온 사자(死者)’가 될 수 있었다. 조씨 이후로도 북에 억류됐던 국군 포로 양순용 장무환씨 등 ‘돌아온 사자’들의 귀환이 이어져 그때마다 분단의 비극을 상기하게 된다.

▽최근 보도된 작가 이문열(李文烈)씨 부친의 생사 미스터리는 또다른 모습의 분단비극을 보는 것 같아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이씨는 부친의 별세 소식을 듣고 두만강변에서 북한땅 묘소를 향해 ‘망제(望祭)’를 지낸 지 며칠만에 생존해 있다는 연락이 와 다시 중국 옌볜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부친의 생존을 주장하며 나타난 이복동생이 진짜인지 확인할 수 없어 부친의 생사도 미스터리라는 보도는 비극적이다 못해 황당하기까지 하다.

▽그동안 남북한 간에는 10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이산가족의 재회를 위해 여러 차례 회담이 있었으나 번번이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한달여 전에도 이산가족 재회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회담이 베이징에서 열렸으나 연평해전을 빌미로 한 북한측의 외면으로 변변한 논의도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이번에는…’하고 기대했던 이산가족들에게 또 한번의 실망만 안겨준꼴이 됐다.

▽작가 이씨의 사건을 계기로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위한 북한측의 결단을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새 세기를 맞는 것은 민족적 죄악임을 알아야 한다. 위패를 검은 테이프로 가려 ‘돌아온 사자’가 된 조씨의 경우처럼 작가 이씨의 부친도 생존해 있어 ‘망제’가 헛 일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임연철 논설위원〉ynch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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