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송우혜/'北민둥산 사진' 참혹상 웅변

  • 입력 1999년 8월 15일 19시 43분


삶의 진실이 담긴 사진에서는 소리가 난다더니, 현재 기아상태에 빠져 있는 북한의 민둥산 사진(9일자)이 바로 그러했다. 식량난 때문에 산의 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만든 밭들이 수재(水災)를 불러와 식량난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는데, 사람과 자연이 함께 내지르는 참혹한 신음소리가 굉음처럼 울리는 듯했다. 민족 분단사의 한 시기를 웅변하는 그 사진을 실은 편집은 일종의 역사행위에 값한다.

그러나 북한의 양강도에만 처절한 민둥산이 있는가. 지난 주 내내 계속된 김현철(金賢哲)씨의 사면 소동과 검찰의 불법적인 야당 계좌추적에 관한 보도를 지켜보노라니, 우리 역시 언제 산사태가 덮쳐 내릴지 모르는 허연 민둥산 아래 있는 듯했다. 사회기강과 행동기준이 이렇듯 대책 없이 파괴되어도 우리 사회의 정체성과 건강이 제대로 유지될 것인가. 관련 사설과 기사들이 사안의 심각성을 잘 짚었다. 나대로 선생(13일자)은 검찰의 야당 계좌추적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냉소와 야유를 실감나게 형상화했다.

8·15를 앞두고 우리의 삶과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좋은 기획이 눈에 띄었다. NGO시리즈의 일환인 한국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2000년 법정’ 기사(10일자)는 역사의 정당한 발전은 어떻게 가능해지는가를 선명한 논리로 소개했다.

‘日 右傾化(우경화)로 가다’의 3회에 걸친 연속기사는, 바로 지금 우리가 눈을 크게 뜨고 정신을 단단히 가다듬어야 함을 시의적절하게 일깨워 주었다. 일본 정치가의 망언 빈도 도표(12일자)에 들어 있는 “히로시마에 우스운 비(한국인 위령비)가 있다”란 구절이 새삼스레 독약 바른 비수처럼 마음을 찔렀다.

오마에 겐이치의 ‘백년하도급國 지적’(10일자)은 잘 다듬은 틀에 담아낸 공든 기사였다. 그래서 그에 동의하든 않든 간에 충격적으로 우리 사회를 각성시키는 힘이 있었다.

신구범(愼久範) 축협회장의 할복사건 보도는, 사회경제적인 측면과 파장뿐만 아니라 그 문화적 의미까지 좀더 심층적으로 추적했어야 했다. 그가 내세우는 주장에 관한 논란과는 별도로, 하필 ‘할복’이란 방식을 선택한 것이 우리 사회에 제기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본래 항의나 분노나 사과를 표시하기 위해 배를 갈라 햇빛과 공기에 창자를 노출시키는 할복은 가장 일본적인 행위이다. 우리 민족의 관습과 정서와 정체성에 어긋나는 일그러진 문화형태이며 돌출현상이다.

전에 이준(李儁) 열사가 일본의 침략을 규탄하느라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석상에서 할복자살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뺨에 난 급성 종기의 일종인 단독(丹毒) 때문에 현지 병원에서 수술까지 받았으나 회복 못하고 별세하자 그 죽음을 대일 항쟁에 활용하느라고 할복자살설을 만들어 퍼뜨렸다.

지난 해에도 전직 안기부장의 할복소동을 겪으면서 강한 거부감과 우려를 금할 수 없었는데, 이제 국회 안에서 할복소동이 벌어지니 심히 착잡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민족의 정체성과 문화의식이 굴절되고 이지러지는 현상이야말로 협동조합의 통합문제보다 더욱 본질적이고 중요한 현안이다.

김지하의 ‘단군 인식’문제에 관한 기사는 그 취지와 방향이 좋았다. 우리 민족공동체 앞에 제시된 사상을 진지하게 검증하는 작업이 어째서 필요한가를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송우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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