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동욱/구조조정 시장논리에 맡겨야

  • 입력 1999년 8월 15일 18시 44분


최근 정부가 발표하는 경제지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내년쯤에는 경제성장과 물가, 국제수지 등 이른바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나올 수 있다. 유감스럽지만 나는 이러한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정부는 5개은행의 폐쇄와 함께 제일은행 등 매각이 종료되면 금융부문 구조조정이라는 대단원의 막이 내릴 것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 재벌의 구조조정도 최근 돌출한 대우그룹 사태 등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막대한 공적자금(公的資金)을 쏟아 부어 억지로 굴러가게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금융권과 재벌의 구조조정은 문제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지금 진행되는 ‘빅딜’처럼 정부가 전면에 나서서 기업간의 거래를 강요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시장경제 원칙이 배제된 채 관주도로 이루어진 타율적 빅딜로 말미암아 몇 년 후 분쟁이나 후유증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더라도 빅딜은 말 그대로 시장의 논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마땅하며 기업들의 자율적 판단이 필수적으로 전제돼야 한다.

이런 원칙을 무시해 화를 자초한 전형적인 사례가 바로 반도체 빅딜과 삼성자동차 대우전자 처리라고 생각한다. 정부에서는 반도체 빅딜을 재고하라는 각계의 충고를 묵살하고 어찌보면 ‘빅딜을 위한 빅딜’같은 무리한 정책을 밀어붙였다. 대우전자도 일찍이 해외매각 등을 모색하는 것이 훨씬 나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삼성자동차도 무리하게 빅딜로 몰고 가지 말고 그룹자체 내부에서 자금을 마련해 경영을 정상화하든지, 아니면 그들이 알아서 매각하도록 놓아두었더라면 사태가 이토록 어려운 국면으로 빠져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폭풍의 위기를 넘긴 한국경제에 또 하나의 거대한 암초로 등장한 대우그룹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도 이러한 원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대우그룹의 처리도 결국 시장의 흐름에 맡겨야 한다. 정부가 아침저녁으로 대우문제에 대한 처방전을 바꾸는 것을 보면서 국민은 불안하다.

정부의 이러한 태도 때문에 해외 채권은행들마저 들썩거리고 있지 않은가?정부는 일련의 경제현안들과 관련해 냉철한 자세로 그 개입 여부를 판단하고 원칙을훼손하지 않기를 바란다.

정부 정책은 예측 가능성과 투명성이 확보됐을 때만이 국민의 신뢰를 받게 마련이다. 크고 작은 어떠한 정책이라도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만 국민적 합의하에 강력한 힘을 얻게 된다. 더욱이 특정집단의 독단으로 결정돼서도 안되며 밀실같은 곳에서 급조돼서도 안된다.

김동욱<한나라당 의원·국회 재정경제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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