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사람]「누가 일본의 얼굴을 보았는가」

  • 입력 1999년 8월 13일 19시 40분


“천황제를 빼고 일본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죠. 그런데 막상 천황이라는 존재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는 극히 제한돼 있습니다. 일본 이해의 올바른 ‘키워드’를 제시하기 위해 책을 썼습니다.’

천황제라는 화두로 일본을 분석, ‘누가 일본의 얼굴을 보았는가’(푸른역사)를 낸 제주 탐라대 일본학과 이규배교수(42). 일본 건국신화부터 재위중인 아키히토(明仁)의 생활상까지, 천황에 대한 모든 것을 이 책에 모았다.

“어린 시절부터 일본이라는 존재가 낯설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일본에서 신혼시절을 보낸 때문에 일본 풍물을 배경으로 한 사진이 집에 많았거든요.’

그에게 일본이 더욱 가깝게 다가온 것은 대학 재학 시절 내내 드리웠던 군부독재의 그늘 때문.

“우리나라에서 사라지지 않는 억압적 통치체제는 일제가 남긴 통치구조와 의식구조에 그 원인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연히 해답도 일본에서 구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지요.’

85년 일본 와세다대에 유학, 10년만에 ‘일본의 피차별부락민 논고’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밑바닥 계층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연구하다 보니 우선 사료(史料)읽기에서부터 시작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게 됐습니다. 자연히 천황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접하게 됐죠. 일본인이 가진 계층의식의 정점에 천황이 있다는 사실도 새로운 깨우침으로 다가왔습니다.’

12세기부터 19세기말 까지 천황은 실권 없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그러나 봉건 실력자들이 천황제를 폐지하지 않은 데는 상하 귀천의 질서를 엄격히 하고자 했던 통치원리가 도사리고 있었다.

이런 신분의식은 일본의 전통종교 ‘신도(神道)’와 결합했고, 근대화과정에서 천황의 권력이 부활하면서 ‘천황의 이름아래 대학살을 감행하는’2차대전의 광기로 나타났다고 이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구상중인 다음 책에서는 일본이 용의주도하게 근대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을 담을 예정.

“우리는 일본인이 약삭빠르고 교활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이 말은 뒤집어 보면 치밀하고 전략적 사고에 능하다는 뜻이 됩니다.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는 바로 그 장점이 발휘된 것입니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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