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칼럼]혼란스런 內政 불안한 安保

  • 입력 1999년 8월 13일 19시 10분


국민은 혼란스럽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정치권의 ‘범죄’들이 잇달아 보도되는데도 끝은 시원찮기 때문이다. 최근에 다시 불거진 세풍(稅風)만 해도 그렇다. 한나라당이 집권당이던 시절에 국세청을 동원해 기업들로부터 선거 자금을 모금했던 일은 국기를 흔드는 중대 범죄였다.

게다가 그렇게 모금한 돈의 일부를 현역 국회의원인 당 간부들이 개인적으로 썼다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그들은 공직을 맡을 수 없는 파렴치범들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수사는 막히고 있다.

“우리 선거 자금을 수사하려면 당신네들 선거 자금도 수사해야 한다”는 공격에 대해 정부 여당이 꼬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고 국민은 정부여당이 켕기는 데가 있어서 저러는구나 하고 짐작한다. ‘경기은행 사건’도 대통령의 친인척 관련 보도가 나오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정치권의 부정부패는 워낙 구조적이어서 질타할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고 치고, 그렇다면 검찰을 비롯한 사정당국은 모두 허수아비들이란 말인가. 대검 공안부장의 파업유도 사건에 대한 수사도 납득할 수 없는 선에서 봉합하고 말더니 그 뒤의 사건 수사들도 검찰은 여전히 권력의 시녀임을 확인시켜주는 것으로 매듭지어지고 말았다.

◆정략에 따라 국정운영◆

도대체 법이고 원칙이고 다 무너지고 있다. 그저 정치권의 편의와 정략에 따라 국정이 운영되고 있을 뿐이다. 김현철씨 부분 사면도 그 한 보기이다. 그렇고 보니 ‘신당 창당’이란 것도 결국 내년 16대 국회 총선에 대비한 얼굴 화장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비친다. ‘신당’의 화장을 위해 ‘영입’되는 ‘새 얼굴’이 몇 해 뒤엔 ‘헌 인물’로 치부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 우리 정치권의 딱한 실상이다.

확실히 국내정치는 너무나 어지럽다. 이렇게 중심을 잃은 채 여야의 정쟁이 격화되어 왔으니 수재 예방이 제대로 될 수 있었겠는가. 아무리 억수같이 비가 내렸다고 해도 정쟁에 쏟을 정력의 반만큼이라도 민생에 미리 기울였더라면 피해를 상당히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정치권은 특히 정부여당은 지금부터라도 원리원칙을 세워가는 노력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권력의 주변부터 깨끗이 청소하면서 여건 야건 자를 부분은 과감히 잘라야 할 것이다.

내정(內政)이 이처럼 난맥상을 보이는 가운데 안보 상황에 불안 지수가 높아지는 현실도 걱정스럽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이 워낙 강하게 경고하는데다가 일본 역시 경계의 고삐를 늦추지 않기에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늦추리라는 기대를 가져 볼 수는 있다.

그러나 만일 북한이 끝내 국제사회의 경고를 무시하고 미국 본토에까지 도달할 수 있는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그것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단숨에 높이게 될 것이다. 미국이 마치 이라크와 유고를 군사적으로 응징했듯 북한을 군사적으로 응징할 수 있다는 미국 일각의 강경대처론이 그것을 증명한다. 미국의 군사적 응징은 한반도 전체를 제2의 한국전쟁으로 몰고 갈 위험성을 안고 있음이 뻔하지 않은가. 포용정책에 기대를 걸고 엄청난 돈을 북한에 보내주었는데도 상황은 이렇게 불안해지고 있을 뿐이니 착잡하다.

◆남북관계 심각한 고비◆

그렇다고 해도 북한을 상대로 미사일 발사는 북한에 너무나 많은 것을 잃게 된다는 것을 납득시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우선 클린턴 미 행정부의 북한에 대한 ‘연착륙’정책은 끝을 볼 것이며 강공정책이 뒤를 이을 것이다.

내년에 실시될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북한에 대한 강경론을 펴 온 공화당이 승리할 수 있는 기회를 높여주게 되고, 그리하여 공화당 행정부가 들어서게 되면 북한이 바라는 미국과의 수교는 몇 년 동안 지연될 것이다.

일본은 곧바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에 대한 분담금 지불을 중지할 것이며 북한이 바라는 수교 협상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북한의 위협을 구실삼아 일본의 ‘우경화’ 및 ‘군사대국화’는 촉진될 것이다. 한국 정부도 햇볕정책을 쓰기가 매우 어렵게 된다. 이 모든 것은 북한을 더욱 더 고립과 빈궁 속으로 몰아넣게 될 것이다. 전반적으로 보아 한국의 내부상황과 남북한관계는 심각한 고비를 만나고 있다.

정치지도자들은 우선 위기의식을 갖고 국민을 안심시키는 조처들을 슬기롭게 취해야 할 것인데, 첫 걸음은 역시 정정당당한 처신을 통한 신뢰회복이라 할 것이다.

김학준〈본사 편집논설고문·인천대총장〉h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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