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강우현/21세기 문화정책은 이렇게…

  • 입력 1999년 8월 11일 19시 32분


문화의 발전과 대중화를 표방하면서 매년 한 분야씩 집중조명하는 연례행사가 있다. ‘무슨무슨 해’라는 것으로 우리 국민에겐 비교적 친숙한 용어다. 그동안 연극영화 책 등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지정돼 왔다. 간혹 전문분야 종사자간의 밥그릇 싸움이나 조장하는 이벤트에 불과하다는 혹평도 없지 않았으나 그래도 능률과 경제논리가 우선하는 현실에 문화마인드를 높이는데 기여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우세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은 무슨 해가 될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문화의 세기’로 일컬어지는 새 천 년의 첫 번째 문화예술의 해인 까닭이다. 이전과는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기대도 있다. 지금은 새로운 문화양식이 밀레니엄의 이름으로 전세계에서 시도되고 있다.

장르의 파괴나 해체는 이미 시작된지 오래이고 분야간의 상호작용이 가속화되어 문화예술은 또다른 차원에서 자리매김될 것이다. 1900년대식의 ‘전공세분화’논리가 힘을 잃어가는 대신 신지식으로 포장된 제삼의 영역이 21세기형으로 떠오르고 있다. 장르간, 이질적 분야간의 창조적 재결합은 물론 문화예술인과 ‘보통사람’과의 거리도 좁아지고 있다. 대중화라는 말도 이미 전문용어가 아니다. 2000년이 무슨 해가 되건 적어도 전세기와는 분명히 다르게 시작돼야 한다. 이를위해 몇 가지 지적하고 싶다.

먼저 정부가 주도하는 문화운동은 해당분야를 특별지원한다는 시혜적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금을 지원하면서 해당분야를 일사불란하게 통합하고 국민을 계도하겠다는 계몽주의적 발상은 다원화된 21세기의 문화정책으로 부적합하다. 과거처럼 전문가들이 똘똘 뭉쳐 한 해를 빛내주기를 바라서도 안된다. 전문분야가 미세하게 나뉘어지는 한 편으로 새 분야로 끊임없이 재생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조직위원회 구성에 있어서도 원로와 젊은 층을 망라해 각계각층 인사들이 골고루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문가는 절반을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고 본다.

문화예술의 해가 대중과 괴리되고 폐쇄적이라는 지적을 받는 것도 지나치게 전문가 중심으로 운영돼 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화예술의 해가 한 해의 이벤트로 끝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매년 연례행사처럼 치러졌지만 대부분 금세 잊혀졌다.

예를 들어 내년이 디자인문화의 해가 된다면 보다 진보적 접근이 필요하다. 오늘날의 디자인은 전문분야와 대중성이 철저히 결합된 제삼의 분야이다. 전통적인 미술의 장르를 포함하여 만화영상이나 애니메이션과 같은 첨단산업, 생활문화상품, 거리미관, 가정미관, 가정문화에 이르기까지 디자인은 이미 전문분야가 아니라 대중문화의 집합체다. 디자인 자체가 보통명사다. 따라서 디자이너와 문화예술인, 시민운동가, 어린이와 청소년이 함께 새 천년 문화를 만드는데 함께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국민 전체의 창조적 문화역량을 이끌어내고 문화예술 각 분야의 고른 발전을 이루는 신지식화 사업의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강우현(문화환경 대표·그래픽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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