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이문재/자기자신을 돌아보는 방법

  • 입력 1999년 8월 6일 19시 05분


옛 어른들은 단옷날이면 가까운 친구들에게 부채를 선물했다. 난이나 죽을 치고 그 옆에다 죽비소리 같은 서늘한 문장 두어 줄을 덧붙였을 부채, 그것을 전하는 맑고 깊은 우정이나, 그 부채를 저으며 무더위를 건너갔을 선인들의 느긋한 풍류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사동에 나갈라치면 길가에 진열된 부채에 눈독을 들이며 벗들의 얼굴을 떠올리곤 했다.

새 천년의 입구에서 부채는 골동이거나 장식일 따름이다. 전력과 센서에 의해 자동적으로 가동되는 에어컨과 ‘솔바람’까지 내는 선풍기 앞에서 부채는 도무지 설 자리가 없다. 에어컨이 달린 아파트에서 나와 에어컨이 돌아가는 자동차나 지하철을 타고, 대형 에어컨이 가동되는 일터를 오가는 하루하루. 대부분의 도시인들은 바깥 날씨와 차단된 채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게다가 그 바깥 날씨조차 신문과 방송을 통해 늘 전날 밤에 ‘경험’되어진다. 몸으로 자연을 접하는 이른바 몸의 직접성이 사라지고 있다.

부채와 에어컨은 극지에서 대척한다. 부채는 사방이 탁 트인 열린 공간에서 부쳐지는 반면 에어컨은 완벽하게 폐쇄된 공간을 요구한다. 부채의 시절이 자연친화적 문화라면 에어컨은 자연을 배제, 격리시키는 문화다. 부채가 마당과 사립문, 고샅으로 이루어지는 수평의 열린 공간과 대응한다면 에어컨은 아파트와 지하상가, 고층빌딩으로 대표되는 수직의 닫힌 공간과 어울린다.

에어컨을 떼어내고 저 부채의 시절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문 꽉꽉 닫고 사는 이 여름철에 부채가 가지고 있던 미덕을 떠올리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를 돌아보자는 것이다. 에어컨은 안을 시원하게 하기 위해 바깥을 무덥게 한다. 에어컨은 나만 잘되면 된다는 이기주의와 자연을 인간의 편의를 위한 수단으로 치부하는 인간중심주의의 상징이다.

부채와 에어컨은 독서와 영화보기의 관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독서는 부채질처럼 배타적이지 않다. 영화는 에어컨을 틀어놓은 실내처럼 빛으로부터 차단된 닫힌 공간을 전제로 한다. 책읽기는 지하철이나 공원처럼 열린 장소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부채질과 책읽기는 열린 공간에서 행해지면서도 ‘개인성’을 지킨다. 부채질이 더위 안에서 더위를 견디는 방식이라면, 책읽기는 시간과 공간의 구애를 받지않고 자기 내면과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거대도시의 일상에서 ‘자기자신’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책과 여행, 그리고 명상(명상 대신 연애를 꼽는 사람도 있다), 이 세 가지를 벗어나면 자기 자신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 명상은 어느 정도 훈련과 조용한 공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만만치 않다. 여행도 시간과 여비가 들기 때문에 훌쩍 떠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책밖에 없다. 유명한 과학소설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말했던가. 책은 전원이 필요없는 고성능 컴퓨터라고.

막바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이열치열이라는 선인들의 지혜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한나절쯤 짬을 내 부채질을 하며 미뤄두었던 책을 가까이 해 볼 일이다. 부채와 책은 우리가 얼마나 닫힌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를, 우리의 몸이 얼마나 자연으로부터 차단돼 있는지를, 인간이 한순간의 편의를 위해 자연을 얼마나 착취하고 있는 것인지를 넌지시 일러줄 것이다.

이문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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