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의 삶·예술]‘비디오 예술’의 시조

  • 입력 1999년 8월 5일 21시 30분


텔레비전은 전자시대 대중매체의 주역이면서 광고를 생존수단으로 삼는 상업주의문화의 상징이기도하다. 게다가 텔레비전은 대중과 각별히 친숙하게 밀착하고 소통한다는 점에서 매우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매체이다. 이처럼 미묘한 텔레비전을 주요 작품소재로 사용하는 백남준은 대중의 우상인 텔레비전에 대하여 늘 정치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예술철학으로 삼는다. 텔레비전이 이미 대중의 의식을 지배하는 우상이 돼버린데다 상업문화의 표본이기 때문이다.

백남준은 데뷔 초기에서부터 지금까지 텔레비전의 대중지배에 대한 역기능을 놓고 예술적 해석을 가함으로써 비디오예술의 시조가 되었다. 그의 예술은 이때문에 늘 공격적이고 반미학적이며 매체저항의지를 담고 있다. 즉 비디오예술은 자연정보를 무참히 편집, 가공하는 인공적인 텔레비전(artificial TV)과는 달리 관객과의 비판적이고 실체적인 교감을 전제로 하는 ‘자연 TV(natural TV)’를 주장해온 것이다.

백남준의 60년대 초기 작품들은 그가 첫 전시회에서 보여주었듯이 텔레비전을 억압하거나 조작, 또는 방해함으로써 비디오예술이 텔레비전과 어떻게 다른가, 또는 텔레비전의 의도된 편집태도와 어떻게 다른가에 관심을 집중시켜 왔다. 즉 텔레비전과의 차별화를 위해 텔레비전을 의도적으로 공격함으로써 생기는 매체환경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대중의 참여와 소통을 전제로 하는 ‘자석 TV’이다.

‘자석 TV’란 텔레비전 영사막 앞에 자석을 가져다 댈 때 나타나는 영상의 뒤틀림이나 이미지변화를 이용한 작품을 말한다. 이는 자석을 이용하여 텔레비전 영상이미지를 적극 방해하고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착안한 또 다른 백남준의 발견이다.

이 작품은 65년 1월 뉴욕의 뉴 스쿨에서 열린 백남준의 미국내 첫 개인전에서 선보였다. 그의 의도는 전시장에 텔레비전을 켜놓고 그 앞에 커다란 말굽자석을 매달아 놓은 뒤 관객 스스로 자석을 브라운관 앞에 가져다 댐으로써 엄청난 이미지변화를 체감케 하는 것이었다. 대중의 우상 텔레비전은 순식간에 대중이 조작하는 자석의 움직임에 따라 갖가지 문양으로 바뀌게 되며 정보독점의 상징이자 상업자본주의시대 전자매체의 총아로서의 기능을 순식간에 잃고 만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사실 그가 일본에서 전자기술자들과 연구하는 과정에서 영사막의 전자기 부하를 교란하기 위하여 반지처럼 생긴 자석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착상한 것이었다. 뉴욕에서의 첫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백남준은 여러 가지 자석을 준비하여 텔레비전에 올려놓거나 브라운관 끝에 매달아놓았다. 텔레비전을 관객에게 조작하도록 위임한 것이다. 이러한 자석의 작용을 이용한 비디오예술은 60년대 후반 백남준의 모니터를 활용한 설치작업에서 다양하게 이용되었다.

자석을 이용한 이미지변형작업은 흑백텔레비전과 컬러TV의 경우 각각 다르게 나타났다. 컬러텔레비전의 경우 청, 녹, 적색의 색깔은 자기장의 힘에 따라 아름다운 곡선이 나타났다. 이 때 무늬들은 자석의 끝 근처에서 작은 부분들로 갈라져 활 모양의 선을 따라가다가 영사막의 한 가운데에 와서는 부채꼴이 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그리고 영상의 맨 위쪽에서는 원모양을 한 둥근 점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66년 백남준은 스웨덴의 스톡홀름미술관에서 열린 ‘비디오예술’전에서 처음으로 춤추는 무늬를 연출하였다. 그는 두 대의 발전기와 두 대의 20와트 짜리 증폭기, 진공관 속에 설치된 코일을 통해 이 영상을 얻어냈다. 또 67년 뉴욕의 하워드와이즈 갤러리에서 열린 ‘궤도 속의 광선’, 그리고 뉴욕의 보니노 화랑에서 열린 ‘전자예술’전에서 이러한 작업을 선보였다. 이러한 자기작업에 동원된 작품은 ‘전자 블루스’ ‘탱고 일렉트로닉’ ‘론도 일렉트로니크’ 등 매우 음악적이고 율동적인 제목이 붙여졌다.

자석을 이용한 텔레비전 방해작업, 또는 새로운 이미지연출 작업들은 대부분 관객이 텔레비전에 관여함으로써 창조되는 이미지다. 관객참여에 대한 백남준의 상호적이고 정보소통을 추구하는 예술적 개념이 내재되어 있다. 이는 백남준이 플럭서스 퍼포먼스에서 보여주었던 분방한 관객참여와 소통의 정신을 비디오예술에서 폭넓게 실천한 것이었다. 특히 관객은 가정에서보는 텔레비전의 편집되고 연출된 이미지를 잊고, 아름다운 영상을 즐기게 된다는 이른바 반 텔레비전문화에 대한 실천의미도 갖고 있었다.

한편 백남준의 의도와는 달리 이러한 실천방법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관점도 있었다. 즉 비디오가 가지는 최대의 장점이자 특징인 자연주의적이고 사실적인 리얼리즘미학을 버리고 단순히 추상이미지만 연출한다는 비평이 그것이었다.

당시 비디오는 현재시간인 리얼타임을 재생할 수 있는 전자테크놀러지의 매력을 대중이 직접 소유할 수 있다는 특징 때문에 텔레비전이나 영화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민주적 매체로 인식되었다. 때문에 60년대 미국의 정치, 사회적 격변 속에서 비디오는 사회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도구로까지 인식되고 있었다.

이러한 관객참여 방식에 의한 백남준의 실천은 후에 아예 ‘참여 TV’로 까지 작품제목이 붙여졌다. 또 관객이 다양한 방법으로 작품에 관계하고 작품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차원으로 발전되었는데 텔레비전 모니터를 이용하여 침대처럼 만든 ‘TV 침대’나 ‘TV 십자가’ 등 다양한 이름으로 제목이 정해졌다.

백남준의 자석TV와 춤추는 무늬들은 전자이미지합성기인 비디오신디사이저가 개발된 70년대 전자이미지의 추상화작업으로 들어가는 전 단계였다. 백남준이 최초로 개발한 비디오신디사이저는 전자예술도 회화처럼 추상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였다. 또 컴퓨터에 의존하지 않고도 이미지를 얼마든지 자유롭게 변형시킬 수 있어 그만큼 경비를 절감할 수 있게 하였다.

관객참여방식에 의한 예술적 실천은 백남준미학의 중요한 하이라이트이다. 그는 참여와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는 예술적 실천은 예술의 독재, 또는 독백예술로 간주하였다.

또 고급예술로 변질된 모더니즘이 예술의 계급화를 초래한 것도 바로 관객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가 80년대 들어 시작한 다양한 인공위성 프로젝트와 정보초고속도로 프로젝트들은 이러한 예술의 대중화와 문화대중주의적 사고와 연결된다.

이용우(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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