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伊 베니스 비엔날레 수상작가 이불

  • 입력 1999년 8월 2일 18시 30분


전국에 폭우가 쏟아진 1일 오후.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상 수상작가인 이불(35)은 비피해에 대비해 서울 성북동 집을 둘러보며 하루를 보냈다. 집안이 어수선하다며 손님을 맞기 쑥스러워 하는 그를 집근처의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는 베니스에서 무엇을 겪고 느꼈을까. 그는 이야기 도중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차려놓고 나온 저녁음식이 맛있는지 다정하게 물어 보기도 했다. 사회 속의 남성중심주의를 비판하는 작품들을 발표해왔지만 따뜻한 주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남편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만 밝혔다.

―수상이후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6월12일 상을 받은 뒤 1주일가량 현지에 머물다 귀국해 조용히 지냈어요. 몇년 동안 쉴틈없는 해외전시를 치르느라 몹시 지쳐있었습니다. 피로를 풀기 위해 당분간 작업을 멈추기로 했어요. 긴장이 풀려서인지 더 피곤하군요.”

―이번 베니스비엔날레에 대한 느낌은 어땠습니까?

“미술표현에 대한 제약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크기나 소재 등이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지요. 이제 일정한 경향이나 특징으로 세계미술의 흐름을 재단할 수는 없다고 봐요. 성격규정 자체가 무리한 일입니다.”

―최근 국내 미술계 일각에서는 국제화시대에 오려 ‘한국적인 것’이 더 특색있고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무엇이 옳다 그르다 단정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어요. 다양한 시각과 관점이 중요하지요.”

―이번에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중심적 시각을 꼬집는 ‘사이보그’, 생선에 바늘로 구슬을 꿰어 자연에 대한 인간의 폭력을 표현한 ‘장엄한 광채’, 노래방기계를 이용해 대중문화의 힘과 일반인들의 관계를 나타낸 ‘속도보다 거대한 중력+아마추어’를 출품했습니다. 이 작품들은 여성과 남성, 인간과 자연, 문화 속의 ‘힘의 관계’, 즉 ‘권력’을 다룬 것으로 보입니다.

“‘권력’에 대해서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사실 인간주변의 ‘권력관계’야말로 은밀하면서도 본질적인 사회문제입니다. 저는 세계 어느 곳에서든 존재하는 보편적인 문제들을 표현하고 싶어요.”

―이번 비엔날레에서 노래방기계를 이용한 작품에 대해 심사위원들의 평가가 한때 엇갈렸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만….

“일부 심사위원들이 ‘창작품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기계를 갖다놨다’고 비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노래방기계 자체는 소재일뿐 그 기계를 통한 대중문화에 대한 고찰이 작품 본연의 뜻이었습니다.”

―올해 비엔날레에 대거 참가한 중국 작가들은 일부 작품성이 낮다며 현지 언론에서 후한 점수를 받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중국 작가 중 훌륭한 작가가 많아요. 같은 아시아작가로서 중국 미술인들이 세계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이 저로서는 반갑더군요.”

이불은 당분간 대중문화를 다루는 작품에 치중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내년 한 해 동안도 독일 본 미술관의 ‘2000년을 위한 새로운 제안’전에 참가하는 등 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서의 각종 전시일정으로 분주할 것으로 보인다.

〈이원홍기자〉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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