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部수해]흙탕물 「바다」…곳곳 옥상서 『살려달라』

  • 입력 1999년 8월 1일 19시 36분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쏟아지는 장대비에 연천과 동두천, 문산과 파주 등 경기 북부지역은 삽시간에 흙탕물의 망망대해(茫茫大海)로 변해버렸다.

축사와 농가가 밀집한 한탄강과 차탄천 주변지역은 돼지와 젖소 등이 둥둥 떠다녔고 고립무원의 섬으로 변해버린 문산과 파주지역은 가옥과 상가들이 지붕만 겨우 모습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수재에 대피소에 모인 주민들은 “이사라도 가야 되는 것 아니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연천·동두천

수마(水魔)가 휩쓴 경기 연천군 일대는 그야말로 ‘물바다’였다. 폭우로 범람위기에 놓인 차탄천과 한탄강 그리고 임진강이 역류하면서 물은 군내 10개면을 집어 삼켰다.

흙탕물은 가옥과 임야, 사람과 짐승을 가리지 않았다. 양계장과 돈사의 닭과 돼지들은 서로 뒤엉켜 집단폐사했고 주인 잃은 개나 젖소 등이 홀로 지붕 위에 남아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내곤했다.

군내 유입도로는 물론 긴급 연락을 취해야 할 전화마저 31일 밤 이미 두절됐고 전기마저 끊겨 연천군 일대 3000여 이재민들은 대피소 32곳에서 두려움에 떨며 밤을 지새워야 했다.

1일 점심경 비가 잦아들면서 연천읍내에서 물이 빠지기 시작하자 군청 2,3층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주민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진흙범벅이 돼버린 집 앞에서 이재민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일부 주민들은 젖은 이부자리와 옷가지를 널어 놓고 가재도구를 집 밖으로 옮기는 등 부산한 모습이었으나 먹을 물이 부족해 애를 태웠다.

주민들은 “96년에도 똑같이 수해를 입었다”며 “왜 똑같은 일이 반복돼야 하느냐”며 원망하기도 했다.

오후들어 본격적인 구조작업이 시작됐다. 119구조대와 군은 백학면 전동리 등에서 고립된 주민 29명을 헬기와 보트를 이용해 구조했다. 전기와 전화도 원상복귀됐다.

지난해 8월 나흘간 620㎜이상의 집중호우로 1만2000명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던 동두천은 1년만에 반복된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전날부터 이틀간 400여㎜의 폭우가 쏟아진 동두천은 1일 오전 9시40분경 동광교 아래 신천이 범람하면서 중앙동과 보산동 등 상습침수지역이 다시 물에 잠겼다.

한계수위가 3.5m인 동광교는 1일 오전 9시반 수위가 4.43m까지 높아지면서 흙탕물속에 휩싸였다. 신천의 범람으로 빠져나갈 곳을 잃은 빗물은 하수도를 타고 역류했고 주민들은 집 안팎에서 쏟아져들어오는 물줄기에 속수무책이었다. 5개동 1288가구가 또다시 침수됐고 36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미군 2사단 동두천기지 역시 1년만에 다시 정문 앞 도로가 침수되면서 통행이 전면중단됐다.

특히 동두천지역 이재민들은 한탄강의 범람으로 인한 동두천 상수도 취수장의 침수로 급수가 전면중단되는 등 이중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문산·파주

3일 동안 500㎜가 넘는 장대비가 쏟아진 경기 파주시. 이번 수재의 최대 피해지역중 하나인 문산읍을 비롯, 파평 적성 군내 법원면과 금촌읍 등 파주시 곳곳은 교통두절과 전화불통 정전 단수 등으로 ‘고립무원의 섬’으로 변했다.

96년에 이어 3년만에 다시 물난리를 만난 문산읍 시가지의 3분의 1가량이 1일 오전 9시반경부터 문산읍내를 가로지르는 동문천이 범람하면서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했다. 가옥과 상가들은 흙탕물위로 처마와 지붕만 드러낸 채 잠겼고 그 사이를 소주병 옷가지와 냉장고 TV 등 가전제품과 각종 가재도구 쓰레기들이 둥둥 떠다녔다.

특히 지대가 낮은 미군기지노조아파트 등 문산읍내 곳곳의 건물옥상에는 미처 대피하지 못한 주민들이 “도와달라”며 구조대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기도 했다. 일부주민들은 옥상에서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옷가지를 마구 흔들며 구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폭우로 문산전화국이 물에 잠기면서 읍내 통신수단이 두절돼 고립감을 더했다. 119 구조대원이 ‘물바다’가 된 마을 곳곳에서 4대의 구명보트를 타고 구조에 나섰으나 “여기도 도와달라”는 다급한 외침은 끊이지 않았다

31일 밤12시경 요란한 사이렌 소리에 가재도구도 제대로 못 챙기고 다급하게 인근 고지대로 대피한 주민 300여명은 대피소에서 불안한 표정으로 밤을 꼬박 새웠다. 가슴높이까지 차오른 흙탕물은 논밭과 통일로 경의선철길을 완전히 뒤덮은 상태. ‘흙탕물 바다’앞에서 담배를 피워물고 섰던 10여명의 인근 주민들은 “올해농사도 다 끝났다”며 허탈한 모습이었다.

◆기타 지역

1일 하루동안 500여㎜의 비가 쏟아진 강원 철원군 근남면과 서면 등 강원북부 일부지역은 전화가 끊기거나 도로가 침수되면서 마을이 고립돼 도재해대책본부에서도 정확한 피해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800가구 2300여명의 주민이 고립된 서면 자등리 주변 6개마을은 1일 마을 입구의 진입다리가 불어난 물에 유실되면서 마치 ‘육지속의 섬’처럼 변해버렸다. 철원군은 이날 군부대 헬기를 요청해 라면 50상자와 모포 150장 등 생필품을 공수할 예정이지만 기상악화로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애를 태우고 있었다.

인천 강화지역과 경기 김포지역에서도 1일 오후 침수된 농경지와 집에서 빗물 퍼내기 작업이 한창이었다.

또 30일부터 시작된 제2회 ‘강화 고인돌축제’가 열리던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고인돌 유적지와 길상면 초지리 황산도 갯벌에서도 이틀째 행사가 중단됐다.

〈권재현·이헌진·선대인·박윤철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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