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검찰 왜 머뭇거리나

  • 입력 1999년 7월 26일 18시 33분


경기은행 돈 1억원에 얽힌 ‘이영우(李映雨)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는 이영작(李英作)박사가 쥐고 있다. 서이석(徐利錫)전경기은행장은 ‘로비의 귀재’여서 이씨의 단순사기극에 넘어갈 간단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 전 경기은행 관계자들의 얘기다. 서이석―이영우―이영작―권력층으로 이어지는 로비 커넥션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는 이유도 이때문이다. 그렇다면 검찰은 현단계에서 이박사를 집중수사하는 게 순서다.

그러나 검찰은 이씨로부터 이박사에게 로비자금이 건네졌는지를 조사중이라면서도 지난주 이박사의 미국출국을 막지 않았다. 이박사가 ‘이영우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핵심인물로 부각됐다면 출국금지조치는 당연한 기본 절차다. 더욱이 검찰은 이미 서전행장과 이박사가 이씨의 소개로 만난 사실이 있음을 밝혀냈다. 다만 두 사람은 만난 시기와 목적에 대해 엇갈린 진술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적으로 진실을 가려야 할 대상이 바로 이 대목이다. 석연치 않은 이박사의 출국은 검찰이 과연 확고한 진상규명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문을 준다.

처음에 임창열(林昌烈)경기지사 부부를 전격적으로 소환조사할 때만 해도 검찰은 강력한 수사의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나 주혜란(朱惠蘭)씨가 받은 4억원의 행방에 대한 수사가 지지부진하면서 기대는 빗나가기 시작했다. 검찰은 최기선(崔箕善)인천시장의 개입의혹에 대해서도 오락가락하더니 뒤늦게 소환 조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보도다. 이번엔 임지사의 당선축하금 문제가 불거졌다. 축하금의 규모와 법적 성격은 반드시 규명해야 할 사안이다. 경기은행사건은 결국 ‘총체적 부패’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경기은행 사건은 퇴출을 막기 위한 로비에 국한하고 있는 것 같은 양상을 띠고 있지만 사실 그 뿌리는 20여년간 쌓여왔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그동안의 부실 덩어리들이 IMF사태로 인해 하루아침에 터진 것뿐이라는 얘기다. 임원진에 대한 낙하산 인사와 정관계 인사들의 부당대출압력 등이 경기은행을 부실하게 만든 근본요인으로 꼽힌다. 97년에는 부실대출에 대해 기관경고를 받은 바 있고 심벌마크 교체작업을 위해 100억원을 쓰는 등 방만한 경영을 해왔다고 한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관계당국은 무엇을 했는가.

검찰은 경기은행 사건을 수사하면서 ‘검찰페이스’를 지키겠노라고 다짐해 왔다. 정치권과 언론의 영향을 의식한 듯한 말로 보인다. 그 말이 ‘자의적 수사’가 아닌 ‘원칙적 수사’를 뜻한다면 바람직한 일이다. 로비 커넥션 등에 대한 수사가 양파의 겉껍질만 까고 치우는 식이 돼서는 안된다. 검찰이 핵심까지 깔 수 있는지 국민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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