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신창원이 남긴 수수께끼

  • 입력 1999년 7월 18일 18시 39분


탈옥 무기수 신창원(申昌源)은 2년반만에 부산교도소 0.7평짜리 독방에 재수감됐다. 당연한 귀결이다. 신출귀몰한 신창원이 붙잡혔다는 소식에 사회가 온통 떠들썩하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람들이 적지않다. 강절도범에 불과한 한 젊은이한테 이 사회가 너무 휘둘리는 듯하다.

속담에 ‘때린 사람은 다리를 오그리고 자고, 맞은 사람은 펴고 잔다’고 했다. 도피중 연인원 100만명 가까운 경찰력을 피해 다니며 때론 경찰과 격투를 벌이면서 88건의 강절도에 5억4000만원(경찰집계)을 턴 신창원은 분명히 ‘때린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서는 양심의 가책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 세간에서 화제의 인물은 2억9000만원의 인질강도를 당한 서울 강남의 어느 80억 재산가다. 그는 거액을 주고 신고를 하지 않는 대신 “내 신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신창원과 ‘즉석협상’까지 벌였다고 한다. 그는 ‘맞은 사람’이면서도 지금 잠을 이루지 못할 듯 하다.

이 부자는 사채업자라는 설 외에 전현직 고위공직자일 것이라는 설도 있다. 부자는 약속대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고 신창원도 그의 신분을 철저히 ‘보호’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왜 ‘도둑과의 협상’까지 해야 했는가. 강도를 당하면 경찰에 신고해 범인을 빨리 잡도록 하는 게 상식일텐데 말이다. 그 부자가 80억원의 양도성예금증서를 갖고 있는 사실을 신창원이 어떻게 알았는지도 수수께끼다. 그를 도운 범죄조직 또는 후원세력이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돈다.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를 이 사회의 비정상적 모습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신창원이 2년반동안이나 숨어 지낼 수 있었던 데는 10여명의 여인들도 큰 몫을 했다. 이들은 그의 정체를 알고 나서도 신고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경찰에 거짓말까지 해 ‘독안에 든 쥐’를 놓치게 하기도 했다. 무엇 때문일까. ‘사랑했다’ ‘다정한 사람’이라는 게 이유였다. 동거여인들의 빗나간 심리도 그렇고 그를 마치 의적(義賊)처럼 미화하는 사회 일각의 분위기는 또 어찌된 일인가. 이번에 그가 붙잡히자 일부에서 나온 ‘아쉽다’는 반응은 이 사회의 병리현상을 잘 말해준다.

신창원의 검거는 정확한 시민 제보, 침착한 112신고센터 여경, 몸을 아끼지 않은 순천경찰서 수사팀의 합작품이다. 그러나 신창원과 6차례나 직접 맞닥뜨리면서도 번번이 놓쳐버린 경찰의 체포 및 수사능력의 한계는 뼈아픈 대목이다. 광역수사체제가 왜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것인지 경찰은 검거의 기쁨에 앞서 철저한 자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신창원의 도피행적과 범행과정에 대한 세심한 복기(復棋)야말로 경찰이 첫번째로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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