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권의 國情院인가

  • 입력 1999년 6월 29일 18시 43분


국가정보원이 ‘언론단’과 함께 ‘정치단’을 신설해 이미 100여명의 대규모 인원까지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대체 국정원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심각한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국정원측은 이에 대해 “단순한 내부 구조조정이며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광범위한 정보활동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전의 국정원은 체제수호를 위한 활동을 등한시했다는 것인지, 그 주장의 논거가 빈약하고 누가 들어도 코웃음을 칠만큼 상투적이다. 옛 독재정권의 정보기관도 늘 체제수호를 내세웠다. 그러나 실상은 정권수호였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현정권의 여러 인물은 이러한 국가정보기관의 폐해를 체험을 통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현정권 출범후 이종찬체제의 안기부가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자체개혁을 통해 ‘국민의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겠다고 천명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개혁의 요점은 정보의 투명화 공개화로 ‘열린 국정원’을 만들고 구체적으로는 대북(對北)―해외정보 부문을 강화하는 대신 국내 부문은 축소시켜 정치개입과 언론사찰, 인권유린 등으로 얼룩졌던 과거의 음습한 이미지를 떨쳐버린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천용택(千容宅)체제가 들어선 이후 국정원이 ‘음지론’을 내세워 ‘닫힌 국정원’으로 돌아가고 있다. 개혁도 좋고 ‘열린 국정원’도 좋지만 정보기관의 특성상 마냥 열어 놓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일리있는 말이다. 그러나 문을 닫고 안에서는 ‘과거 회귀’에 열중한다면 이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월간 ‘신동아’ 7월호에 실린 ‘천용택의 청와대 극비보고 국정원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천원장은 국정원을 최고통치권자의 안정적인 국정 수행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운영할 것을 밝히고 있다. 특히 이 보고서에는 “부내의 특정요직은 대통령께 충성할 수 있는 요원을 배치해 국정원 장악 및 통치권 보위에 만전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현재 국내정보 부문을 총괄하는 2차장과 기획관리실장, ‘정치단’과 ‘언론단’을 산하에 두고 있는 대공정책실장 등 ‘특정요직’에는 모두 ‘특정지역’ 출신이 앉아 있다. 이쯤되면 현 국정원이 ‘정권수호’에 매달리고 있다는 ‘오해’를 살 만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아무튼 정치개입과 언론사찰의 소지가 있는 ‘정치단’ ‘언론단’ 같은 조직은 없애야 한다고 본다. 만약 야당의 주장대로 ‘검은 속셈’이 있다면 현정권의 개혁은 물건너 간 것이나 다름없다. 며칠전 김대통령은 최근의 국정 실책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했다. 그런데 대통령의 사과 뒤에서 국정원이 ‘정치단’ ‘언론단’이나 만들고 있다면 그 사과의 진의마저 의심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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