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임연철/영화박물관

  • 입력 1999년 6월 6일 19시 25분


2년전 모스크바 근교의 러시아국립영화보관소 소장자료를 조사하던 일본영화 연구자들은 깜짝 놀랐다. 일본에도 없는 일본영화 필름이 1천4백여편이나 보관돼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2차대전 때 3만여편의 영화를 수집한 러시아가 95년 일반공개를 시작하자 일본연구자들이 3년 가까이 샅샅이 조사한 끝에 올린 개가였다. 일본영화사(史)의 복원이 가능하게 됐다는 게 당시 일본신문의 평가였다.

▽그 후 러시아국립영화보관소에 1937년 안석영이 감독한 ‘심청전’을 비롯해 14편의 우리 영화가 보관돼 있음은 동아일보 취재팀의 노력으로 밝혀진 바 있다. 해방전 영화필름이라고는 ‘망루의 결사대’ 같은 친일 영화 몇편밖에 전해지지 않는 상황에서 ‘심청전’필름의 소재 확인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현재 전해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우리 영화 ‘심청전’을 국내로 들여오기 위한 노력이 아직까지 없는 게 안타깝다.

▽옛 영화에 대한 관심이 없다시피 한 현실에서 5일 문을 연 국내 첫 영화전문박물관인 신영영화박물관에 거는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제주도에 세워진 이 박물관은 시나리오 포스터 스틸사진 트로피 소품 등 귀중한 우리 영화관련 자료를 전시한다고 한다. 특별한 관심을 쏟지 않으면 흐지부지 사라질 영화사의 편린들이 한 곳에 모아져 영구 보존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새 박물관은 수집된 자료의 보존과 함께 새 영상자료의 발굴에도 앞장서 줬으면 한다. 일본이 모스크바의 영화보관소를 뒤져 잃어버린 자신들의 영화사를 복원하듯이 새 영화박물관은 구전과 문자로만 전하는 우리 영화를 찾아내 영화사를 복원하는 일도 해야 한다. 그 첫 사업으로 ‘심청전’을 입수해 국내 영화팬들에게 선보인다면 그것만으로도 새 박물관은 존재의 이유를 찾을 것이다.

〈임연철 논설위원〉ynch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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