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홍/총리 수석비서관

  • 입력 1999년 5월 30일 19시 32분


우리나라에서 비서라는 명칭을 처음 쓴 것은 고려 성종때의 비서성(秘書省)이었다. 고려 건국초기에는 내서성(內書省)이었다가 나중에 이 이름으로 개칭됐다. 왕명을 받아 시행부서에 전달하는 역할과 함께 왕의 치적을 기록하는 일을 맡았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승정원이 여기에 해당한다. 조선사 연구에서 공식적 사초(史草)인 조선왕조 실록보다도 승정원일기가 더 귀중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왕의 비서 역할을 한 6명의 승지들 중 우두머리인 도승지는 이조(吏曹)가 하는 일의 연락 조정을 맡았다. 지금으로 치면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이다. 그밖에 좌승지가 호조 담당으로 경제수석, 우승지는 예조로 교육문화수석, 좌부승지가 병조로 외교안보수석, 우부승지가 형조로 사정담당, 동부승지가 공조로 건설담당의 역할을 했다. 국정에서 비중이 높던 승정원은 갑오개혁이후 일반 국사를 떼어내고 왕실사무만 보는 비서감으로 격하됐다.

▽총리실이 1급인 정무 민원 공보비서관을 각각 수석비서관으로 호칭하기로 했다고 한다. 총리실측은 이런 ‘명칭격상’의 이유에 대해 해당분야의 책임자라는 뜻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무어라고 말해도 김종필(金鍾泌)총리의 위상강화를 노린 것임은 숨기기 어려울 것같다. 이 일을 주도한 김용채(金鎔采)신임 총리비서실장도 자민련 전신인 신민주공화당의 원내총무까지 지낸 중진 정치인 출신이어서 더욱 그런 느낌이다.

▽김용채 실장은 JP가 정부내 2인자인 총리지만 정치적으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동급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래서 청와대에만 있는 수석비서관 명칭을 함께 쓰자는 생각일 것이다. 정부 출범당시 각료배분을 양측이 5대5로 동일하게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갑오개혁에서도 보듯이 어떤 이유에서건 비서관의 위상을 높이는 것은 개혁과 현대화에 역행하는 처사다.

〈김재홍 논설위원〉nieman9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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