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페리 방북이후의 포용정책

  • 입력 1999년 5월 30일 19시 32분


미국의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이 방북(訪北)후 서울을 거쳐 돌아갔으나 한미일(韓美日)의 포괄적 권고안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북측은 페리와의 대화가 ‘진지하고 솔직하고 상호존중하는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는 의견접근이나 합의보다는 서로의 이견에 대해 토의했다는 외교적 용어다. 북한을 상대로 하는 협상이 첫 술에 배부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지만 이번 페리의 방북 결과는 우리의 기대에는 못미친다.

우선 페리가 29일 저녁 서울에서 발표한 성명을 보면 그는 북측에 기존의 북―미 대화채널이 유지되기 바란다는 미국 입장을 전달했다. 이에 북측도 94년 제네바합의, 미사일협상, 4자회담 등의 채널을 유지하고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여기에 한국이 제기한 남북 당국간 회담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페리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관한 제반사항을 논의했다고 했지만 그것 역시 미국의 동북아 정책일 뿐이지 한국민이 열망하는 남북 당국간 대화를 중요하게 다룬 흔적은 없다.

페리가 3박4일간 북한에 체류하면서 만난 인물들이 북한체제의 핵심 실세들이어서 향후 대북협상을 기대하는 견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중에서도 북한 군부의 최고실력자들인 조명록(趙明祿)총정치국장 김영춘(金英春)총참모장 김일철(金鎰喆)인민무력상과 당 조직지도부의 군사담당 부부장 이용철(李勇哲)을 만난 것은 이례적인 성과로 여겨진다.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을 면담하지 못한 데 대한 보상성격이라 해도 그 만남은 의미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군 실력자들에게 직접 핵과 미사일 같은 대량살상무기의 포기를 권유한 외부 인사는 없었다.

최근 정부의 대(對) 4강 외교는 북한의 태도변화와 한반도 냉전구조의 해체를 뒷받침할 국제환경을 조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모스크바를 방문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28일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과 가진 양국 정상회담에서 대북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와 협력 약속을 얻어낸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그러나 남북관계의 진전은 아직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북한이 미국에 대해서는 깍듯하지만 남한을 상대할 자세는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27일 공개된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는 한국의 햇볕정책이 국내적으로 초당적 지지를 받지못하고 있어 김대중정부 임기가 끝난 후에도 지속될지 불확실하다고 전망했다. 정부는 대북정책이 우선 국내에서 초당적 지지를 받아야 미일(美日)에 대해서도 주도역할을 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적 정서를 읽는 데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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