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캠페인]서울 車 55% 정지선 무시

  • 입력 1999년 5월 24일 08시 40분


운전면허 기능시험의 14개 항목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게 뭘까.

서울 강남운전면허시험장 관계자에 따르면 철길 건널목과 횡단보도 앞 정지선 지키기에서 가장 많은 응시생들이 위반을 한다는 것. 10명 가운데 7,8명이 정지선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점수를 잃는다는 얘기다.

운전미숙 때문에 이처럼 정지선을 잘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사단법인 녹색교통운동은 17∼19일 서울시내 주요도로 6개 지점에서 운행차량의 횡단보도 정지선 준수여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정지선을 제대로 지키는 차량은 조사대상 9백41대 가운데 절반에도 못미치는 4백23대(44.5%)에 불과했다. 이는 영국 런던의 정지선 준수율 80%, 독일 만하임의 92.6%, 일본 도쿄(東京)의 67.4%와 비교하면 형편없이 낮은 수치다.

차종별로는 대형 화물차의 경우 87.5%, 택시는 71.2%가 제대로 정지선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여자 운전자(40.4%)에 비해 남자 운전자(56.2%)의 정지선 위반율이 높았다.

보행자가 녹색등만 보고 횡단보도를 건너다가는 사고를 당하기 십상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차량들의 횡단보도 정지선 위반은 곧바로 보행자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일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97년 보행중 사망한 4천2백62명 가운데 3백64명(8.5%)이 횡단보도를 건너다 숨졌다.

횡단보도 부근 30m 이내에서의 사고까지 합치면 보행중 사망자의 10.8%가 횡단보도상 또는 부근에서 사망한 셈이다. 이는 사망원인 중 무단횡단 다음으로 높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보행중 교통사고 사망율이 선진국에 비해 4∼12배 높은 것은 이처럼 기본적인 정지선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는데서 연유한다는 게 교통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녹색교통 김미영(金美英·33)연구실장은 “95년 20%에 불과하던 정지선 준수율이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형편없는 수준”이라며 “경찰의 단속이 유명무실한 것도 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정지선 준수율이 높아진 것은 수년 전부터 시민단체와 언론기관이 대대적인 홍보를 펼친 덕분이라는 것.

‘횡단보도 정지선 지키기’ 감시단을 운영중인 사단법인 그린훼밀리운동연합 이영(李映·44)국장은 “통학로 주변의 횡단보도에서조차 운전자들이 정지선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며 “감시단 운영을 통해 정지선 준수의식을 확산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감시단은 정지선 위반차량에는 적색스티커, 모범 차량에는 청색스티커가 붙여진 도로교통지도 등 홍보물을 나눠주고 각종 위반차량 조사활동을 벌여 운전자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정지선 준수의식을 갖도록 유도할 예정이다.

〈이헌진기자〉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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