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 스탠더드]인터넷상거래 세금 어떻게 물리나?

  • 입력 1999년 5월 21일 10시 13분


97년 어느 금요일 S항공사에 화재가 발생해 기술자료실이 전소됐다. 항공기를 정비 수리하는 데 필요한 설계도와 관련 자료들이 모두 소실됐다. 그날 오후 세계적 항공기 제작업체 미국 보잉사 전문가들이 S 항공사에 도착했다.

이들은 주말 동안 통신망을 구축해 S항공사와 보잉사의 전자자료실을 연결시켰다. 월요일이 되자 S 항공사 정비팀은 산더미처럼 쌓인 기술도면을 뒤질 필요 없이 온라인으로 자료와 도면을 찾아 곧바로 정비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인터넷 상거래가 얼마나 편리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 GE와 일본 NEC 등 선진국 거대기업들은 이미 수년전부터 인터넷을 구매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포리스트 리서치사는 전세계 전자상거래가 97년 현재 1천1백38억달러에서 2000년에는 6천5백79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처럼 전자상거래 규모가 초고속으로 성장하는 것은 거래 당사자간에 존재하는 시간과 장소의 장벽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통한 상품과 서비스의 거래가 폭증하면서 세계 각국은 한가지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다. 바로 세금을 어떻게 물리느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인이 영국에서 개설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한국인에게 소프트웨어를 판매했다. 이 거래가 온라인상에서 이뤄졌다면 어느 나라가 세금을 부과해야 하는 것일까.

소득세는 전통적으로 소득이 발생한 나라(원천지국)가 부과권을 쥐고 있다. 미국업체가 한국에 물건을 팔면 한국이 미국업체에 소득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어떤 기업이 자기 물건을 다른 나라에서 팔고자 할 때 보통 그 나라에 매장이나 판매대리상을 두기 때문에 원천지국은 이런 매장이나 대리상에게 소득세를 부과하고 있다.

전자상거래는 기존 세제(稅制)에서 ‘장소(고정사업장)’ 개념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전자상거래는 사업장을 외국에 두지 않고도 온라인상에서 주문을 받고 우편으로 물건만 보내주면 되기 때문. 이 때 소득세를 걷을 방법이 없어져 버린다.

거래되는 물품이 무형(無形)의 상품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만약 국내 A사가 미국의 음반회사와 계약을 맺고 인터넷을 통해 음악 파일을 다운로드받은 뒤 CD에 담아 통신판매를 한다고 하자. A사는 이 사업으로 연간 1백억원 매출을 올려 20억원을 미국 음반회사에 음악파일 다운로드 대가로 지급한다고 하자.

과세당국은 이같은 거래가 실질적으로는 음반을 수입 판매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며 미국 음반회사에 지급한 20억원을 과표로 삼아 관세 2억원과 수입부가가치세 2억2천만원을 부과할 수 있을까. 물론 A사는 컴퓨터 파일은 음반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라며 세금부과에 불복할 것이다.

과연 어느 쪽이 옳은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법률가들은 관세와 부가세부과는 잘못된 것이라며 A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관세법상 수입은 외국으로부터 한국에 도착한 물품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하며 수입물품에는 관세를 부과한다고 규정돼 있다. 부가가치세법은 재화의 수입을 부가가치세 과세대상으로 규정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음악파일이 관세법과 부가가치세법상의 ‘유형의 물품(재화)’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해석.

전문가들은 “현행법상 물품 또는 재화는 운송수단으로 이동이 가능한 유형의 물건”이며 “컴퓨터파일은 물품이나 재화가 아니고 인터넷도 운송수단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따라서 A사는 관세와 부가세를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미국 음반업체의 지적재산권을 사용한 것이므로 한미조세협약에 따라 미국업체에 20억원을 지불하기 전에 미국업체가 내야 할 소득세를 원천징수해 한국 과세당국에 내면 된다는 것.

그러나 황의인(黃義仁)변호사는 “전자상거래가 급속히 발달한 상황에서 운송수단을 통해 이동가능한 유형의 물품에만 관세 등을 부과하는 것은 불공평한 차별과세라고 볼 수 있다”며 “이 부분은 법개정이나 조세협약을 통해 해결해야 할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전자상거래는 세제뿐만 아니라 세무행정에서도 다양한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거래 당사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워지고 거래의 암호화 등 때문에 보다 쉽게 탈세를 할 수 있다.

국제적으로 이같은 전자상거래에 대한 조세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전자상거래의 과세원칙을 확립하기 위해 몇차례 국제회의를 열어 “전자상거래에 대해 전통적 거래에 부과되지 않는 새로운 과세가 이뤄져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전자상거래를 통해 주로 수출을 하는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등은 ‘수입국(원천지국)이 아니라 수출국(거주국)이 세금 부과권을 가져야 한다’며 선진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흐름을 몰아가고 있다.

전자상거래가 폭발적으로 느는 상황에서 선진국 주장처럼 세금을 부과하지 않거나 거주지국이 세금을 부과한다면 한국과 같이 수입국 입장에 있는 개도국의 세수(稅收)는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다.

한국조세연구원 홍범교(洪範敎)연구위원은 “전자상거래에 대한 국제적 논의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지는 못하더라도 다른 나라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한국에 유리한 입장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치영기자〉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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