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어령 새천년준비위원장에 듣는다

  • 입력 1999년 5월 20일 19시 23분


“새천년 기념사업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닙니다. 우리 국민에게는 국제통화기금(IMF)사태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환희의 마당이자, 천년 뒤의 후손까지 염두에 두는 축제가 될 것입니다.”

대통령 직속 새천년준비위원회 이어령(李御寧)위원장은 20일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는 또 19일 발표한 ‘평화지수’ ‘평화의 공원’ ‘평화와 행복에 이르는 열두대문’ 건설 등 새천년맞이 기념사업 시안에 대해서도 해명을 잊지 않는다.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이번 기념사업이 우리 국민이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천년 의식’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새천년 기념사업’을 꿰뚫는 핵심정신, 비전이란 무엇입니까.

“평화입니다. 과거 1천년간 세계 역사를 지배한 것은 전쟁이었습니다. 파괴와 갈등의 전쟁 패러다임을 평화의 패러다임으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사랑은 천년을 갑니다.”

―이 패러다임으로 글로벌리즘을 대체하자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죠. 한손에 글로벌리즘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천년을 꿰뚫는 시간축, ‘밀레니어니즘’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잡아야 합니다. 오늘 내가 한 행동이 내 자손에게, 천년 후의 후손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면 아무렇게나 살아갈 수 없습니다. 자기의 행동을 천년 단위로 생각해보자는 것이 ‘천년 의식’입니다. 앞으로 ‘빨리빨리’로 상징되어 왔던 한국병을 극복하고 오늘 당장이 아니라 천년후의 후손에게 물려줄 평화 행복 창조의 역사를 만들어주자는 것이지요.”

―그런데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기념사업 시안이 발표된 데 대해 의아해 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사실 2000년 1월1일의 D―200일인 6월15일 완성된 프로그램을 내놓을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곳 저곳에서 새천년 관련 계획을 발표하는 바람에 새 천년을 이런 식으로 맞아서는 안되겠다 싶어 쫓기듯이 기본적 ‘틀’만 발표한 것입니다. 뉴스거리를 주기 위해 ‘평화지수’ ‘평화와 행복에 이르는 열두대문’ 등을 내놓았습니다. 실제 열두대문이 들어설 수 있을지, 대문 한개만 세울지는 많은 이들의 여론을 수렴하여 결정하게 됩니다.”

―한국적 새천년맞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만 외국의 밀레니엄맞이와 어떻게 차별화할 계획입니까.

“외국의 밀레니엄 이벤트는 과학과 기술에 집중돼 있습니다. 우리는 ‘두 손’으로 전통과 미래까지 균형있게 보여주자는 것입니다. 2000년 1월1일 0시에 펼칠 TV섹션을 상상해보십시오. 첨단의 초박형TV에 가장 한국적인 콘텐츠를 담는 겁니다. 한국적 리듬으로 우주를 꿰뚫는 생명의 교감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우리에게는 융합과 상생의 패러다임이 있습니다. 인간과 자연, 물질과 정신, 개인과 공공, 국가와 세계 등 이항 대립의 갈등과 마찰을 ‘두 손’으로 모으는 것을 새천년맞이 행사를 통해 보여줍니다.”

―일회성 행사나 이벤트에 그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외국의 밀레니엄 위원회야말로 이벤트와 행사를 위주로 준비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우리는 행사위주가 아니라 비전을 내놓았습니다. ‘즈믄 해법(밀레니엄법)’ 등은 이같은 비전을 특별법으로 만들어 국가가 장기적으로 시행할 겁니다.”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도 ‘IMF 졸업’을 하지 못했습니다. 새천년맞이 사업이 꼭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그런 시각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기 하남시에서 열릴 천년맞이 박람회를 예로 들어 봅시다. 이 박람회를 일회성 행사로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 위원회의 아이디어를 담아 환경산업으로, 환경도시로 발전시켜 나가는 겁니다. IMF사태가 터졌을 때 우리 국민은 금반지를 뽑았습니다. 이번 새천년 기념사업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금반지’를 빼는 작업입니다. 온국민이 다함께 한마음이 되어 ‘천년을 산다’는 희망을 얻는다면 새천년 기념사업의 의의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이위원장은 “우리 20명의 위원들은 ‘천년의 요리’를 만드는 요리사라는 각오로 일하고 있다는 점을 꼭 써달라”고 당부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들은 02―732―2000으로 전화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정리〓김순덕·이승헌기자〉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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