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임규진/「한국경제 칭찬」의 겉과 속

  • 입력 1999년 5월 16일 20시 04분


15, 16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재무장관회의는 재기(再起)한 한국경제를 칭찬하는 자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대표로 참석한 이규성(李揆成)재정경제부장관은 각국 장관의 면담 요청에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이들은 외환위기 극복의 비법이라도 전수받으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회의 중간에 쉬는 시간이면 블룸버그통신 등의 기자들이 이장관 앞으로 몰려들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기자는 밤 11시에 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로렌스 서머스 미국 재무장관지명자에 대한인물평을 부탁하기도 했다.

바로 1년전의 똑같은 회의에서 동정과 걱정을 한몸에 받았던 한국의 처지와 비교하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장관은 “너무 칭찬을 많이 받아서 불안한 심정”이라는 표현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칭찬에는 가시가 숨어 있었다. 회원국 재무장관들은 이장관에게 “한국이 너무 자만해선 안된다”는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전의 흥청망청하던 모습을 그들은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국이 아직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으며 구조조정을 제대로 못할 경우 어떻게 될지도 알고 있다.

서머스 장관지명자는 이장관을 만나자마자 “한국의 남은 과제는 5대재벌 구조조정”이라며 세계 각국의 우려를 직접적으로 전달했다. 그가 이처럼 꼬집어서 얘기한 것은 우리 경제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읽고 있기 때문이다.

각국 장관들의 ‘자만 경계론’은 정부만이 아니라 기업 소비자 은행 등 모든 경제주체들이 함께 생각해봐야 할 화두(話頭)다. 세계가 한국을 따갑게 주시하고 있으며 한국은 여전히 위기수습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임규진<경제부>mhjh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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