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예종석/事故공화국의 기업경영

  • 입력 1999년 4월 22일 19시 39분


국민은 불안하기만 하다. 비행기가 떨어지고 지하철은 파업으로 우리를 불편하게 할 뿐만 아니라 각종 사고로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화물기 추락사건에 관해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국무회의 석상에서 대한항공의 경영방식을 비판하며 경영체제의 변화를 요구했고 그 요구는 즉각 관철됐다. 이러한 대통령의 직설적 발언은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사고자체보다 더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재계는 이 질책을 소유와 경영분리 정책의 신호탄으로 해석해 전전긍긍하고 정부는 대통령의 지적대로 ‘기업이 아파하고 두려워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여러 가지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첫째, 안전사고가 과연 항공산업이나 대한항공만의 문제인가 하는 점이다. 흔히 한국을 사고공화국이라고들 한다. 90년대 들어 일어난 큰 사건만 해도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도시가스 폭발사고, 서해페리호 참사, 대한항공 괌 추락사고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사고 후에는 항상 다시는 이런 사고가 없도록 안전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수도 없이 들었고 그 숫자만큼의 사고를 또 겪으면서 안전불감증은 점점 심화됐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전까지 30여년간 한국 경제는 세계경제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고속성장을 했다. 그 시절의 화두는 양적 성장이었고 그 대가로 우리는 삶의 질을 포기해야만 했다. 정부의 경제 정책은 공급자 중심으로 편향됐으며 국민의 안전 같은 것은 누구에게도 그다지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빨리 달리는 자동차가 사고를 일으키는 것처럼 우리의 현대사는 각종 사고로 얼룩져 있다. 우리 사회의 어느 한구석이 안전한가. 가스폭발사고가 났을 때는 지하의 배관지도 조차 완벽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왔고 지하철이나 고속철 건설도 엉망이라는 보도도 있었으며 대형건물치고 설계대로 지어진 집이 없다는 루머도 있었다. 사실여부는 차치하고 부실의 소문만으로도 국민의 안전은 위협받는다. 이제 우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안전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고 종합적인 안전관리대책을 수립해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사고의 위협을 발본색원해야 한다.

두번째로 생각하게 되는 것은 대통령이 요구한 소유와 경영의 분리 문제다. 이 해묵은 논쟁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주장하는 측이나 그 반대측의 입장이 모두 나름대로의 논리로 대치하고 있으나 한 가지만큼은 분명히 해두고 싶다. 기업의 투명경영이 요구되는 이 시점에 대주주이거나 그 자손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영능력이 없는 인물이 기업을 이끌어서는 결코 안된다.

한국 기업의 폐단으로 지적되는 오너의 독단경영은 그 개인이나 기업은 물론 국민의 안전마저 위협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 글로벌시대에 능력에 관계없이 승계되는 부자간의 세습경영이나 같은 돌림자를 쓰는 형제들의 족벌경영 같은 우스꽝스러운 경영 작태는 사라져야 마땅하다.

셋째는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에 관한 문제다. 대통령이 일개 기업의 경영체제까지 간섭하는 것은 그 의도하는 바에 공감이 가는 측면도 없지 않으나 ‘권위주의 경영’을 질책하는 또 다른 권위주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동안 김대통령 자신이 주창해온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에도 배치된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

대통령의 사고원인에 대한 예단은 그 진위나 절차상 문제를 떠나 정확한 사고원인 규명과 종합안전대책 마련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대통령만큼은 자신이 표방한 통치철학에 충실해야 국가의 기강이 서지 않을까.

지금 우리는 IMF 사태라는 초대형사고의 수습 와중에 있다. 이 어려운 회생의 과정에서 과거 고속성장을 위해서 희생시켰던 많은 것들을 되찾아 균형성장을 이루어나가야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삶의 질이다. 경제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국민생활의 질적 향상이며 그 전제조건은 바로 안전이다. 이제 어떤 정책도 국민의 안전에 우선할 수는 없다. 국민에게는 안전할 권리가 있다.

예종석<한양대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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