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精文硏이 이상하다

  • 입력 1999년 4월 11일 19시 42분


요즘 정신문화연구원(정문연)의 내부 움직임이 뭔가 심상치 않다. 얼마전 국민회의 당직자 출신의 인사가 ‘낙하산 인사’로 기획협력실장이라는 요직에 임명됐다. 아무리 정부 산하 단체라고는 하지만 정문연이 국내 대표적인 연구기관이라는 점에서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최근 무단 결근을 문제삼아 2명의 교수에게 해임과 정직의 중징계 조치를 내린 데 대해서도 학계에서는 의아해 하고 있다. 교수를 결근 문제로 해임까지 하는 사례는 교수사회에서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상한 일들은 올해 초 한상진(韓相震)서울대교수가 신임 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구조조정 작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임명된 백계문기획협력실장은 국민회의에서 직능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정당 인사로 학계와는 무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문연의 연구과제 심의와 조정, 예산편성 등의 업무를 맡는 기획협력실장은 전문성을 고려해 지금까지 교수들이 맡아온 자리였다. 한국학을 연구한다는 학술기관에 여당 당직자를 등용한 것은 그간 학계 관행이나 풍토에서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다.

교수 해임 조치는 연구원측과 해임된 교수의 말이 다르다. 해당 교수는 전임 원장으로부터 출결에 신경쓰지 말고 연구에 전념하라는 지시가 있었고 정문연에 출근부 자체가 없기 때문에 무단결근이 징계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항변한다. 정문연은 결근 일수가 1백40일이나 돼 일벌백계를 위해 문책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수에 대한 평가가 연구실적과 능력이 우선이라고 볼 때 이번 조치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그래서 뭔가 속사정이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학계가 정문연에 거는 기대는 한국학 연구의 본산으로 자리잡는 것이다. 국내 한국학 연구가 갈수록 위축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기대는 어느 때보다 크다.

하지만 정문연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풍’에 시달려 왔다. 정권들이 한국학 연구보다는 자신의 통치이념을 합리화해 주는 기관쯤으로 인식하고 그런 연구를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혈세만 낭비되고 본래의 한국학 연구기능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이런 과거가 되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학계에서는 새 원장 체제가 제2건국운동 등 정부정책을 홍보하는 국책연구기관에 무게를 두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낙하산 인사’나 ‘교수 길들이기’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갈등 소지를 없애기 위해 정부는 정문연 기능을 한국학연구와 국책연구 중 어느 한쪽으로 방향을 정해야 한다. 두 기능을 함께 갖는 것은 과거의 반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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