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승주/北韓 길들이기 성공했지만…

  • 입력 1999년 3월 17일 19시 31분


금창리 지하시설에 관한 북―미간 합의는 시나리오에 이미 예정돼 있던 일이다. 북한과 미국이 둘 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합의를 봄으로써 모두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먼저 북한 입장부터 생각해 보자. 북한이 심각한 식량부족에 허덕이고 있는 것은 자타가 공인한다. 이번에 지하시설 문제가 타결되지 않았더라면 미국의 직접지원은 물론 다른 나라들도 식량지원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北-美 모두 이득본셈

뿐만 아니라 미국 의회가 북한에 제공하는 중유대금의 예산을 거부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었다. 금창리 문제의 악화는 한국의 포용정책 유지를 어렵게 만들어 금강산 관광 대금 등 북한에 긴요한 달러 수입도 중단될 위험이 있었다. 북한은 미국에 금창리 지하시설 방문을 허용함으로써 식량제공 약속을 얻고 미국의 대북 경제 제재 완화 등 관계정상화의 가능성을 크게 열어 놓았다. 북한은 금명간 완성될 페리보고서가 너무 강경하게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무엇인가 북―미관계의 진전이 있다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면 북한이 지불한 것은 무엇인가. 우선 지하시설에 대한 복수 방문을 허용함으로써 금창리 시설을 핵무기 개발에 이용하는 일이 불가능해졌다. 북한이 지금 와서 또 다른 시설을 건설하는 것도 용이한 일이 아니므로 핵개발 자체가 그만큼 어려워졌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주권침해라고 거부하던 미국의 직접사찰에 합의함으로써 그렇게도 중요시하던 체면에 손상이 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앞으로 다른 시설에 대해 미국이 의혹을 가지면 그것도 개방해야 하는 선례를 만든 것이다.

미국은 합의로 많은 것을 얻었으나 지불한 것은 그다지 크지 않다. 먼저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 가능성에 쐐기를 박았다. 세계적인 핵 비확산 정책의 개가(凱歌)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또 북한 길들이기에 성공했다. 사실 지금의 북한 입장에서 금창리 지하시설을 가지고 도저히 미국과 맞상대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미국은 북한의 절박한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심지어는 북한대표단의 회담 참가비용까지도 미국의 재단이 부담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북한을 미국은 어르고 달래서 큰 값을 치르지 않고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미국이 북한에 지불한 대가는 금창리 건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주려고 하던 것들이다. 식량 지원만 해도 미국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작년에 50만t이라는 막대한 양을 제공해 주었고 금년에도 그 정도는 이미 예정하고 있었다.

▼核개발 포기엔 의문

대북 경제제재와 관련해 한국은 미국에 조건 없이도 모두 해제해 주라는 입장인데 비해 미국은 그것을 협상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북한에 약속한 것은 제재를 단계적으로 해제하겠다는 것이고 이것은 금창리에 상관없이 미국이 갖고 있는 정책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93, 94년의 핵문제와 이번의 지하시설 문제는 다른 점이 많다. 그 당시에는 북한이 원자로를 가동하고 있었고 핵무기의 재료인 플루토늄을 생산할 능력과 준비를 갖고 있었다. 금창리 시설은 그대로 진전이 되더라도 가동하려면 3∼5년은 걸릴 것이라고 한다. 그때의 문제는 기술적이고 군사적인 성격을 상대적으로 많이 내포하고 있었던 것에 비해 오늘의 문제는 정치적인 성격을 많이 갖는다. 즉 이것은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를 새로운 차원과 국면으로 가져가는 계기가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미국에 대한 북한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시그널이 될 수도 있다.

이번의 북―미간 합의는 한국의 포용정책에 무게를 실어줄 것이다. 한국 것이건 미국 것이건 포용정책에 대한 북한의 긍정적인 반응이 엿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대답하기 어려운 몇가지 의문이 남아 있다. 첫째,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완전히 포기했는가. 그와 관련해 미사일 문제도 협상할 용의가 있는가. 둘째, 이번 합의를 북한이 세계로 나오겠다는 신호탄으로 보아도 좋은가. 끝으로 우리는 조금이나마 안심해도 되는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한승주(전외무부장관·고려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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