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인권에 소홀한 검찰

  • 입력 1999년 3월 17일 19시 04분


검찰의 인권불감증이 도(度)를 넘는 것 같다. 입으로는 인권보호를 외치면서 실제 행동은 이를 따르지 못한다. 검찰이 최근 ‘자녀 안심하고 학교보내기 운동’백서를 배포하면서 성폭행당한 학생 80여명의 실명(實名)과 주소 나이 학교 학년 등을 그대로 밝혀 인권침해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 이 백서는 연구기관 학계 등 제한된 분야에 배포된 것이기는 하지만 흘려보낼 수 없는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였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은 “실무자의 실수로 가명인줄 알고 발간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는 실무자의 단순한 실수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오히려 검찰의 밑바닥 인권의식 수준을 적나라하게 반영한 것으로 봐야할 것 같다. 그렇게 볼 때 이번 백서소동은 중대한 일이다. 현 정부는 국민인권위원회 신설에 의욕을 보이는 등 언필칭 인권선진국을 지향하고 있다. 법무부는 법질서 확립과 함께 인권보장을 행정지표로 설정했는가 하면 공안분야에서도 인권을 중시하는 ‘신(新)공안정책’을 선언한 바 있다. 문제의 백서는 외형상 이런 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인권의식은 제자리 걸음임을 실증한다.

이번 백서는 평상시 우리 검찰이 인권문제에 얼마나 둔감하고 소홀한가를 보여준다. 따라서 이미 배포한 백서를 회수한다고 해서 문제의 본질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검찰의 인권의식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한 유사한 일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다. 우리가 우려하는 대목은 바로 이 점이다. 이래 가지고는 당장 검찰의 ‘자녀 안심하고 학교보내기 운동’조차 성공할 수 없다. 이 운동은 검찰과 학부모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녀와 가정의 비밀이 침해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어느 학부모도 검찰을 믿고 신고할 수 없을 것이다.

성폭행당한 학생의 실명 공개가 그 학생의 학교생활과 성장과정, 장래에 끼칠 악영향은 긴 설명이 필요없다. 미성년의 성문제는 세심한 관심과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한 대상인 것이다. 백서에는 학생뿐만 아니라 부모의 실명과 나이 신체 및 정신장애 병력까지 적혀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해당 학부모가 훼손당한 명예는 어떻게 회복시켜줄 것인가. 재발을 막기 위한 면밀한 대책이 요망된다.

아울러 인권문제는 언론보도와의 관계에서도 생각해볼 대목이 적지 않다. 최근 강도피해를 당한 전직 부총리가 잘못된 보도로 명예에 상처를 입었다는 항변은 언론에 경종을 울려준다. 신중한 취재와 보도, 그리고 언론의 자성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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