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해외체험기]서형숙/네덜란드 자전거타기운동

  • 입력 1999년 3월 15일 18시 58분


우리가 갈망하는 선진국의 시민은 어떤 삶을 사는 걸까.

IMF체제 이전으로 되돌아가 물질적 풍요와 안정을 다시 누리게 되는 것인가, 아니면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대우받게 되는 것인가.

나는 후자라고 분명히 말한다.

93년 9월부터 1년 동안 네덜란드에서 생활하면서 이런 확신을 갖게 됐다.

네덜란드는 퍽 잘 사는 나라이다. 93년 당시 국민소득 1만7천달러, 우리의 2배가 넘었다. 그럼에도 작은 차를 선호하고 누구나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시민운동단체와 생산업자 등은 서로 협력해서 자전거타기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당시 네덜란드에는 1천4백만대의 자전거가 있었다. 한 집에 3대꼴.

환경단체의 환경보호실천운동 중 자가용 사용 50% 줄이기 운동이 들어 있다. 가급적 대중교통수단인 버스나 전철을 이용하고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를 타자는 운동이다.

각 시에서 나눠주는 주요 전화번호 안내책에 보면 어김없이 자전거 여행안내자가 나와 있다. 이들이 하는 일은 자전거 여행정보를 갖고 있다가 필요로 하는 이웃에 나눠주는 것이다. 다른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오직 자전거가 좋아서 일하는 무료봉사자들이다.

내가 살던 암스텔페인에서는 인도네시아계 네덜란드인 ‘미스터 테이’가 그 일을 맡고 있었다.

전화를 걸었더니 이웃이라며 뒤로 비스듬히 누워서 타는 자전거로 직접 우리집까지 달려와 자료를 건네주었다.

시민운동 혹은 시민단체활동이 모두 그런 식이었다. 조용했고 생활의 한 부분이 돼 있었다.

세계적 환경단체인 그린피스 본부가 네덜란드에 있었지만 그린피스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한다는 여성을 우연히 한 번 만났을 뿐 특별히 그린피스에 관한 얘기를 들을 수 없었다.

전차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 운전기사가 문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는 방송을 했다. 승객들은 비바람치는 날씨임에도 전차에서 내려 다음 차를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불평하거나 환불을 요구하는 승객은 없었다.

모두의 안전을 위한 조치인데 불만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소비생활은 무척 합리적이다. 30년 된 세탁기, 성냥으로 불을 켜는 가스오븐을 그대로 쓴다. 자동차와 자전거 매장에서는 새 것과 헌 것을 함께 취급한다.

손으로 문을 열고 닫는 구식 엘리베이터도 흔하다. 아낄 것은 철저히 아끼지만 헐벗고 굶주린 지구촌 이웃을 위해 기부금을 내는 데는 절대로 인색하지 않다.

눈앞의 내 이익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며 이웃과 지구촌의 미래까지 생각하는 것, 그것이 참된 시민운동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서형숙<한살림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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