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왜 경찰서장만인가?

  • 입력 1999년 3월 15일 18시 55분


경찰의 가짜반성문 해프닝과 관련한 파문이 계속되고 있다. 서울대 관할 관악경찰서장의 직위해제 소식이 전해지자 서울대 학생과 교수들이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학생들이 학보와 대자보 등을 통해 의견을 밝히는가 하면 교수들도 간담회 등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총리실의 무리한 지시를 일선 경찰관에게 전달한 서장만 전적으로 책임지는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이다. 총리실의 ‘부당한 지시’를 비판(본보 13일자 사설)한 바 있는 우리는 이 해프닝의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문제의 본질과 책임소재를 정확히 파악해 내지 못하는 공직사회의 그릇된 의식과 풍토를 다시 한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간의 경위를 다시 살펴보면 총리실은 경호차량 파손에 대한 처벌은 원치 않지만 변상금과 ‘사과’는 받고 싶다는 뜻을 경찰 고위책임자에게 전했다고 한다. ‘반성문’을 요구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다. 이 주장대로라면 ‘사과’가 ‘반성문’으로 둔갑한 것이다. 총리실은 ‘지시’의 의도가 없었다 해도 현실적으로 우리공직풍토에 비추어보면 경찰로서는 ‘위에서’ 사과를 받아내라는 것을 명령으로 받아들였을 것이 분명하다. 더구나 현 총리는 실세총리라 하지 않는가. 그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총리실의 현실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서장을 직위해제한 것은 일선 경찰관에게 반성문과 변상금을 받도록 강요하다시피한 과잉대응을 문제삼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높은 곳의 말 한마디가 말단에서 어떤 모습으로 바뀔 수 있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사과든 반성문이든 경찰이 나서서 대신 받을 성질은 아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당사자인 서울대 학생회측에 직접 요구할 일이다. 변상금 문제도 마찬가지다. 경찰은 학생들의 행위가 법을 위반했다면 그것만 조사해서 처벌하면 되는 것이다. 외곽경호에 문제가 있었다면 경찰에 그 책임은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호문제가 아닌 변상과 사과를 경찰에 요구한 것은 월권이라는 지적을 면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지금 보건복지부의 국민연금확대 강행, 해양수산부의 한일어업협상 실패 등으로 큰 혼선을 겪고 있다. 정부의 총체적 국정운영능력까지 의심받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련 장관들은 건재하다. 책임행정은 어디로 갔는지 답답하다.

어떤 사안에 대해 공직자를 문책하려면 정확한 사실규명을 한 뒤 그 위에서 책임을 가려야 한다. 그래야만 문책을 당하는 사람도 승복할 것이며 공직사회의 기율이 제대로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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