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법 만드는 사람의 법의식

  • 입력 1999년 3월 10일 19시 24분


15대 국회의원 가운데 홍준표(洪準杓)씨가 다섯번째로 의원직을 잃었다.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 상고심에서 5백만원 벌금 확정판결을 받아 당선무효가 되고 해당 선거구는 재선거에 들어가게 된다.

이에 앞서 15대 의원 김화남(金和男) 조종석(趙鍾奭) 최욱철(崔旭澈) 이신행(李信行)씨가 모두 선거법 위반으로 의사당을 떠났다. 이기문의원은 12일 대법원 상고심에서 벌금 5백만원이 확정되느냐의 여부에 의원직이 걸려 있다.

물론 홍씨는 권력의 표적이 되어 당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가 정부여당 성토에 앞장서 왔고 무슨 ‘저격수’라는 말까지 듣는 것도 사실이므로 본인으로서는 ‘보이지 않는 손’에 당했다고 주장할법 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과는 별론으로 한때 정의의 사도(使徒)처럼 여겨지던 ‘홍준표검사’가,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자기 선거판에서는 준법에 소홀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남에게는 엄격한 준법과 법의식을 요구하던 특수부 검사가 자기 선거승부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느냐, 그것이야말로 이중(二重)의 잣대가 아니냐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그렇게 치열한 검사로서 이름을 떨친 그라면 법을 어겼다는 꼬투리도 잡히지 않게 깨끗한 선거전을 치렀어야 옳다.

비단 홍씨뿐만 아니라 법집행의 지팡이들을 총지휘하던 경찰총수 출신 김화남씨나 조종석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같은 맥락에서 법을 배우고 변호사업을 하는 이기문의원 역시 대법원에서 유죄확정 판결이 난다면 똑같은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그런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선거승부에서 이기기 위해 선거법이라는 룰을 어긴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

홍의원의 퇴장을 지켜보는 이 가운데, 그가 특수부검사로 있을 때 슬롯머신비리로 구속되고 기소됐던 이건개(李健介) 박철언(朴哲彦)의원들이 미소짓는 모습이 사진으로 보도되었다. 두 의원은 모두 검사출신으로 유죄가 확정된 뒤에 사면복권을 받아 의사당에 진입했다.

어떤 일본인의 ‘한국 국회가 세계적으로 전과자가 가장 많다’는 비판이 과연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되 이런 한 소묘(素描)를 보면서 국민은 착잡한 느낌을 가눌 길이 없다.

그리고 ‘사법적 전력’이 복잡한 사람들일수록 의사당에서 전면에 부각되고 큰소리치는 풍토가 한국정치의 악순환 고리가 아닌지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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