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어느 父子의 무박2일 정동진 여행기

  • 입력 1999년 3월 10일 19시 24분


토요일 밤 10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뒤. 정동진행 관광버스는 출발했다. 서울 광화문을 기점으로 정동(正東)쪽에 있다해서 이름 지어진 정동진. 드라마 ‘모래시계’ 방영후 일출명소로 자리잡은지도 오래다.

강원도 동해안의 정동진은 ‘무박2일’여행의 문을 열게 한 곳이다. 무박2일이란 ‘숙박하지 않고 다녀오는 이틀여행’. 영동선(청량리∼강릉) 야간열차를 타고 정동진역에 내려 해맞이 하던 사람들이 지어 부른 이름이다. 지금은 관광버스 답사여행의 ‘주종목’이 됐고 코스도 전국 도처로 다양해졌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여행스타일이다.

정동진 무박2일 여행 시간은 22시간. 짧다. 그러나 다녀오면 얼마나 긴 시간인지 깨닫게 된다. 아니 하루가 얼마나 긴지, 그리고 그 하룻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를 깨친다.

이번 정동진여행은 ‘부자(父子)여행’으로 계획했다. 아이들에게 엄마에 대한 고마움을 느껴보란 뜻이었다. 버스에 오르니 대부분 여행객은 부부, 친구, 가족들이었다. 엄마만 집에 남겨둔채 기자와 두 아들로 구성된 우리 팀이 ‘결손가정’쯤으로 보일 우려도 없지 않았지만 거꾸로 우리 세식구는 묘한 해방감 같은 걸 느끼고 있었다. 좁은 좌석에서 새우잠 자는 아이들에게 담요를 덮어주며 열살 큰아이 발이 벌써 내 손 한뼘만큼 크다는 사실에 잠시 놀라기도 했다.

정동진에 도착한 것은 새벽2시반. 6시경 일출보러 나갈 때까지는 버스안에서 책도 읽고 잠도 잤다. 해변은 1천명 가까운 ‘태양족’(해맞이 여행자)으로 붐볐다. 이날 일출은 불발. 아이들은 애초부터 일출에 관심이 없었다. 밀려 오는 파도를 잰걸음으로 피하는 놀이에만 열중했다. 상쾌한 바닷바람에 머리가 맑아졌다.

다음 행선지는 백두대간에 드는 두타산 무릉계곡(강원 동해시). 오전 9시 아침식사후 반쯤 얼어붙은 계곡의 반석교, 삼화사 학소대를 지나 용추폭포까지 올랐다. 2.7㎞ 트레킹은 왕복 2시간반 정도 걸렸다. 산행 경험이 적은 아이들이 씩씩하게 오르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점심 식사후에는 정선 아라리가 태어난 아우라지를 거쳐 정선선 철도 끝의 구절리역에 갔다. 오후 3시35분. 여기서 여랑∼나전을 거쳐 정선역까지 두칸짜리 꼬마열차를 탔다. 구절양장 정선 깊은 계곡을 옆에 끼고 달리는 이 열차는 운치있어 좋다.

정선역 도착은 오후4시. 버스에 올라 서울로 향했다. 서울 도착은 오후 8시. ‘세 남자’의 22시간 무박2일 여행은 이렇게 끝났다.

〈조성하기자〉summ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