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소액주주운동]김기식/재벌총수 독단경영 제동

  • 입력 1999년 3월 4일 20시 09분


《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시민단체들이 소액주주운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주주의 이익을 해치는 재벌의 경영행태를 견제하기 위해 소액주주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재계는 경영을 위축시키는 선동적 사회운동과 구별돼야 한다고 반론을 편다. 찬반 의견을 들어본다.》

재벌총수 등 지배주주가 기업을 개인 소유물로 인식했던 것이 한국의 기업풍토였다. 소액주주운동은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라는 당연한 원리를 확인시켜 주었다. 주주대표소송, 장부열람권 등 법전 속에 잠자고 있던 소액주주의 권리를 일깨워준 것이다.

제일은행 전현직 이사들에 대한 4백억원 손해배상판결, 13시간반에 걸친 삼성전자 주주총회 등은 최근 소액주주운동의 대표적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소액주주운동은 부당내부거래 등 관행화된 재벌기업의 불법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추궁과 총수의 경영 전횡을 적절하게 견제했다고 자부한다. 이 운동을 통해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를 불러온 재벌들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추궁하고 바로잡는데 제한적이지만 상당한 기여를 했다.

최근 재벌그룹들이 소액주주운동에 대해 공개적인 비판에 나선 것도 역설적으로 보면 이 운동의 의의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한보철강이나 삼성자동차에서 보듯이 견제받지 않는 총수 개인의 독단적 의사결정이 해당 기업은 물론 국가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재벌총수가 불과 2%도 되지 않는 지분으로 100%의 권한을 행사하는 반(反)주식회사적 경영행태는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3일 일본에서는 홋카이도 다쿠쇼쿠은행의 경영자들이 배임혐의로 구속됐다. 회수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부실대출을 해준 것에 대해 형사적 책임을 물은 것이다.

재벌그룹들은 주주대표소송이 보신주의적 경영행태를 조장한다고 비판하지만 시민단체가 책임을 추궁하는 대상은 경영행위 전반이 아니라 부당내부거래 등 위법행위나 회사에 손해가 될 것을 알면서도 이뤄진 부실경영 행위에 제한돼 있다.

한 은행 임원은 “제일은행 판결로 이제 부당한 대출압력을 거부할 수 있게 됐다”며 소액주주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는 재벌총수가 무제한의 권한을 행사하고 경영자가 회사와 주주에 대한 책임보다는 재벌총수 한 사람에게만 충성하는 전근대적인 기업풍토로는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김기식<참여연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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