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규민/수입농축산물 검역

  • 입력 1999년 2월 3일 19시 29분


‘지중해과 실파리’라는 해충이 있다. 과일 속에 알을 낳아 썩게 만드는 이 벌레는 천적이 없어 생태계의 폭군으로 불린다. 한마리가 발견된 다음날이면 반경 4㎞가 모두 감염될 정도로 번식력이 강하다. 웬만한 살충제에는 끄떡도 하지 않아 세계 각국이 대책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아직 국내에 들어왔다는 기록은 없지만 미국 농무부는 농산물교역이 연 1백억달러에 달하는 한국을 ‘단기간내 감염가능 지역’으로 분류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연간 수억t의 먹을거리가 국경없이 넘나드는 요즘 검역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된다. 바로 지중해과 실파리같은 해충이나 전혀 예상 못한 세균이 농수산물에 묻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민의 보건 건강과 직결된 검역을 대부분 눈과 코를 통한 원시적 관능검사에 의존하는 나라가 있다. 아프리카 어디 얘기가 아니다. 선진국 모임이라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인 우리나라의 경우다.

▽이런 수준이다 보니 수출한 나라가 먼저 알려주기 전에는 세균이나 농약에 오염된 수입식품이 국민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알 리 없다. 호주정부가 자국산 쇠고기에서 ‘엔도설판’이라는 농약이 허용치 이상 검출됐다고 우리 정부에 알려온 것이 그런 사례에 속한다. 미국이 수출쇠고기와 소시지에 치명적 식중독균인 O―157균과 리스테리아균이 들어 있다고 알려와 긴급회수한 적도 있다.

▽2004년이면 주식인 쌀을 포함해 모든 농축산물이 개방된다. 이 때가 되면 농림부가 비관세장벽에 의존할 수도 없게 된다. 개방시대의 검역체제에 적응하려면 우선 걸맞은 인력과 기술 그리고 장비를 갖춰야 한다. 농림부 관리들의 자세와 의식이 바뀔 때 검역이 국민을 오염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것이다.

이규민 <논설위원〉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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