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日 평정 조치훈9단/세상사 낯설은 盤上 승부사

  • 입력 1999년 1월 22일 19시 54분


반상(盤上)의 고독한 승부사에게 행복한 가정 꾸리기나 조국 사랑은 ‘사치’이거나 ‘가식’일지 모른다.

일본의 3대 바둑 타이틀인 기세이(棋聖) 메이진(名人) 혼인방(本因坊)를 석권해 대삼관(大三冠)의 위업을 달성한 조치훈(趙治勳·43)9단.

그는 부친 조남석(趙南錫·84)옹이 타계하자 15일밤 프랑스에서 대국을 마치고 한국에 들렀다. 이미 발인을 마친 뒤였다. 그는 기세이전 준비를 위해 하루 반나절 만에 훌쩍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에게 삶의 의미는 오로지 바둑이다. 아내와 아이들(1남1녀)도 그 언저리에 끼어들 틈이 없다.

조9단은 가족과 함께 밥을 먹지 않는다. 집안에 들인 제자들하고만 식사를 한다. 산책도 자식이 아닌 제자들과 함께 한다. 가족과의 오붓한 대화 대신 제자들과의 바둑얘기를 더 즐긴다.

그는 코흘리개 여섯살 나이에 낯선 일본 땅에 ‘내던져졌다’. 스스로 치열한 생존방식을 터득해야 했던 외로운 투쟁의 연속, 그것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특히 60,70년대 일본에서 ‘조센진’이 아닌 ‘한국인’으로 생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수십명의 일본인 바둑선배들의 보이지 않는 질시 속에서 일본 바둑계를 평정하는 천재기사로 우뚝 서기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눈물을 내보이지 않아야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말을 심하게 더듬는다. 한국에선 그렇지 않았다. 결혼전에는 스무살이 넘도록 불을 켜놓지 않고는 잠들 수 없었다.

조9단이 한국땅을 떠난 지 14년만에 군대문제 때문에 일시 귀국했던 76년의 일.

“치훈아 이 분이 네 아버지시고 어머니시다. 여기는 누나와 형님들이고….” 형들은 이렇게 동생에게 부모를 소개시켜줘야 했다.

근년 들어 조9단은 대국을 위해 1년에 몇차례 한국을 방문한다. 하지만 정작 부모와 대면하는 것은 2, 3년에 한번 정도. 부친의 부음을 듣고도 그는 그랬다. 잠시 왔다가 돌아갔을 뿐이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화려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는 ‘이방인’이다. 몸속에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지만 그가 시작한 곳은 일본.

어려서부터 줄곧 언론의 ‘주목’과 ‘감시’를 받아온 조9단. 일본 언론 앞에서는 그는 더욱 말수가 적어진다. 그들이 요구하는 ‘정답’만을 되뇌었다. 생존을 위해서였다면 지나친 말일까.

이 점은 한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37년간 일본생활에도 한국어를 잊지않고 조국을 그리워한 장한 한국인’이라고 한다. 일면 맞기도 하고 일면 틀리기도 하다.

그의 부인은 일본인이다. 아이들에겐 한국말을 가르치지 않았다.

조9단이 ‘성’이라고 부르는 큰형 조상연(趙祥衍·58) 5단이 유일하게 속내를 털어놓는 말동무. 형은 말한다.

“지난 37년간 언론에 나타난 동생의 이미지는 ‘만들어진’ 측면이 강해요. 치훈이는 바둑 이외엔 거의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거든요.”

자신과는 상관없이 주위에서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에 대해 조9단은 특유의 무관심으로 일관한다고 한다. 이는 그가 정녕 세상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외로운 한조각 구름’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평소 즐겨쓰는 휘호 ‘고운(孤雲·외로운 구름)’처럼.

〈김승련기자〉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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