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손호철/경제청문회 제대로 하려면

  • 입력 1999년 1월 21일 19시 30분


최근 들어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적 삶의 질을 잘 반영한다는 이유로 세계적으로 국민총생산(GNP)대신 주목받고 있는 것이 ‘고통지수(Misery Index)’이다.

한 경제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이 고통지수가 지난해 들어 87년보다 무려 14배나 높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국제통화기금(IMF)위기 때문이다. 이처럼모든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경제위기의 원인과 책임을 밝히기 위한 국회특위의 경제청문회가 드디어 열리고 있다.

▼ 위기원인-책임 규명을 ▼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을 생각할 때, 나아가 우리가 앞으로 세계시장에서 살아 남기 위해 과거의 잘못을 통해 배워야 하는 역사적 교훈을 생각할 때 이번 청문회의 의미와 과제는 엄중하기만 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재의 모습은 그런 것 같지 않다.

한마디로 이번 청문회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빗나간 청문회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과거의 잘못을 고치고 기본과 원칙을 다시 세우자는 청문회를, 그것도 긴급을 요하지 않는 청문회를 낡은 독재시절처럼 여당 단독 ‘날치기 통과’로 의결한 것부터 그러하다. 게다가 여당 총재대행이라는 사람이 청문회를 앞두고 김영삼(金泳三) 정권의 엄청난 비리를폭로할 수 있다는 발언으로 청문회의 성격을 정책청문회로 하기로 한 여야간의 합의를 깨고 청문회의 방향에 혼선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비리는당연히 밝혀지고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비리를 알고 있다면 검찰에 알려 수사를 하도록 할 일이지 그렇지 않고 이를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려는 것은 직무유기이자 국민을 우롱하는 행위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여당 단독청문회라는 것도 그러하다. 사안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야당이 요구하고 있는 조건들을 여당이 강자의 입장에서 대승적으로 수용하여 야당을 청문회장으로 끌어들이지 못하는 것은 정치력의 빈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위기에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당사자로서 겸허한 자세로 청문회에 참여해 국민에게 책임질 것은 책임지고 규명할 것은 규명하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특위위원의 여야배분 등 사소한 문제에 집착하고 모든 국정을 대여투쟁과 연계하려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투쟁은 투쟁이고 국정은 국정이다.

그러나 이번 청문회의 진짜 문제는 보다 근본적인 곳에 있다. 그것은 현재의 위기의 뿌리에는 성수대교붕괴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의 졸속주의 전시주의 적당주의가 자리잡고 있건만 그 원인을 규명하는 청문회를 바로 위기의 원인인 졸속주의 전시주의 적당주의식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위기의 핵심주범의 하나인 재벌을 경제회복을 이유로 뺀 청문회, 그것도 이처럼 중요하고 복잡한 사안을 한달도 못 되는 짧은 시한을 정해 놓고 하는 청문회가 그것이다. 한마디로 경제청문회를 하자는 것인지 ‘정치청문회’내지 ‘정치 쇼’를 하자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성수대교식 청문회’이다. 이는 일본이 최근의 경제위기와 관련해 수년간의 심도있는 조사연구를 통해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를 발표한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불행히도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이제 문제는 주어진 틀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한편 보완책을 모색하는 것이다. 사실 위에서 지적한 문제점들이 있기는 하지만 여당은 그 한계내에서 아직까지는 성실한 모습으로 청문회를 잘 이끌어가고 있고 중요한 사실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 야당 반드시 참석해야 ▼

이제 여야가 할 일은 두 가지다. 첫째, 여야는 대승적 차원에서 합의를 이끌어내 반쪽 청문회가 아니라 제대로 된 청문회를해야 한다. 둘째, 단순한청문회는 사안의 성격상 맞지않는 형식이다. 따라서 그동안 제기됐고 이번 청문회에서 논란이 될 주요 쟁점에 대해서 특위가 학계 전문가 등을 포함한 객관적인 연구조사팀을 구성해 1,2년 동안 조사해서 보고서를 만들고 필요하다면 이에 기초해 후속청문회를 개최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미래의 재발방지를 위해서도 결코 성수대교식 청문회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손호철(서강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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