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조계종은 猛省을

  • 입력 1998년 12월 23일 19시 04분


조계종의 종권분규가 대화로 해결의 길을 찾지 못하고 경찰력 투입까지 자초하며 극렬양상을 보인 것은 매우 유감이다. 법원의 가처분 결정과 법집행을 강제로 퇴거당할 때까지 완강히 거부한 승려들의 처사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법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격언은 종교인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

일부에서는 정교(政敎)분리를 내세워 종교문제에 공권력이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종교인들이 서로 폭력을 휘두르며 법의 권위를 무시한 이번 조계종 분규는 종교의 한계를 이미 넘어섰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분규의 본질이 종교관이나 종교교리의 차이가 아니라 종권다툼에서 비롯됐다. 또 분규 당사자들이 분규를 내부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사회법에 제소한 결과 법원이 이를 법리에 따라 판정했다. 그렇다면 설혹 불만스럽더라도 수용했어야 옳았다. 그런데도 스님들은 이를 거부하고 청정해야 할 부처님의 도량(道場)을 아수라(阿修羅)의 장(場)으로 만들었다.

조계종은 종정과 총무원장, 총무원과 종회가 반목하면서 너무 자주 자리 다툼을 벌여왔다. 일반인은 물론 신도들은 종단이 안정을 되찾고 스님들이 수도에만 정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라고 있다. 전쟁과도 같은 법집행 과정을 거쳐 청사를 되찾은 총무원과 중앙종회측도 올해 안에 총무원장 선거를 치러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문제는 새 집행부를 구성한다고 해서 사태가 쉽게 해결될 것같지 않다는 데 있다.

결국 조계종은 만신창이가 된 종단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적극적인 개혁에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새로 구성될 집행부는 사죄하는 심정으로 조계종의 근본적인 개혁에 착수해 주기 바란다. 94년 개혁종단이 마련한 종헌에 의해 종단이 운영됐음에도 이번에 대형분규가 발생한 것을 감안한다면 새로운 개혁은 발상의 전환이 반드시 수반돼야 할 것이다. 막강한 총무원장의 권한때문에 종권다툼이 계속되는 사태를 막기 위한 장치도 필요하고 더 많은 스님들이 수도에 정진할 수 있도록 사찰운영에 신도들을 대거 참여시키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한국불교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어서 굳어진 관행을 고친다는 게 쉽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21세기를 앞두고 국가나 사회 모든 부문이 어려운 개혁에 나서고 있음을 직시하고 조계종 스스로 뼈를 깎는 자기쇄신에 앞장선다면 추락된 위신을 회복하고 국민의 신뢰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조계종은 맹성(猛省)해야 한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 사회를 교화해야 할 종교가 사회의 짐이 돼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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