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이너 리그(34)

  • 입력 1998년 11월 26일 19시 39분


반정 (11)

두환이 두 번째로 신문에 등장했을 때는 이름까지 나왔다. 제대 후 한두 달 빈둥대던 그는 나주 과수원 쪽에 일이 괜찮다는 후배의 말을 듣고 내려가던 길에 광주에서 발이 묶였다. 버스 터미널에 군인들이 쫙 깔려 있었다. 한 남자가 군인들에게 곤욕을 치르는 중이었다. 군인들의 기세로 보아 금방이라도 끌고갈 것만 같았다. 그때 어디에 있었는지 조그만 계집애 하나가 “아빠!”하고 달려와서 남자의 품에 안겼다. 남자는 그제서야 군인들에게서 벗어났다. 두환은 우연히 그 남자에게 담배를 얻어 피우게 되었다. 두환이 물었다.

―근데 무슨 일이에요? 왜 오도가도 못하게 하죠?

남자는 신문기자였는데 무슨 일로인가 해직을 당했다고 했다. 서울이 시끄러워지고 일제 검색이 시작되었으므로 몸을 피해 처가가 있는 광주로 내려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셈인지 이곳이 더 심상찮은 것 같다고 중얼거리는 남자의 이마에는 깊은 주름이 잡혔다. 딸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끌려들어갈 뻔했다며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기도 했다.

남자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없었던 두환은 답답하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뭣 때문에 다들 이러냐고요? 저는 나주 배밭에 볼일이 좀 있거든요.

남자는 깊은 눈빛으로 두환을 묵묵히 쳐다볼 뿐이었다. 두환은 그런 남자가 어딘지 멋있으면서 괴로워 보였으므로 계집애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그해 봄 두환에게는 알 수 없는 일이 많았다. 과수원 일자리를 알아봐주마던 후배와 광주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그는 후배를 만날 수 없었다. 나주에서 오던 버스 안에서 총을 맞았던 것이다. 두환의 눈앞에서도 총격전이 있었다. 두환은 멋지게 피했다. 추억의 그 시절과 별로 다르지 않은 날렵한 동작에 스스로도 감탄할 정도였다. 그러나 골목 안에 몸을 숨기고 있던 그는 불현듯 알 수 없는 전율을 느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터미널에서 만난 남자의 깊은 주름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몇 년 뒤 두환은 명동에서 그 남자를 다시 보게 되었다. 시위대를 향해 연설을 하고 있었다. 두환은 그 남자가 광주에서 본 인물이 맞는지 보려고 가까이 다가갔다가 마침 진압이 시작되고 투석전이 벌어지는 바람에 정강이에 돌을 맞았다. 피가 흘렀으므로 가까운 병원으로 갔다. 기자가 와서 이름과 나이를 물어갔다. 다음날 두환은 버젓이 제 이름이 박힌 신문을 읽을 수 있었다. ‘폭력 시위로 길가던 시민 장두환(33세) 씨가 돌에 맞아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었다.’ 이럴 수가 있나! 두환은 흥분했다. 어떻게 해서 나이가 무려 네 살이나 많게 나왔는지 따져보려고 신문사로 전화를 걸었지만 담당기자와 통화는 하지 못했다.

세번째 보도사건은 83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특별히 강조하기 위해서 세번째에 놓았지만 시간순으로 보면 그것이 두 번째였다. 그때는 한 줄짜리가 아니었다. 여러 신문에 났고 어딘가에는 사진까지 실렸다. 그 얘기는 좀 길었다. 이른바 간첩사건이란 구성과 스토리가 있게 마련이다. 그 일로 두환은 빙고 호텔이라는 속칭을 가진 보안사 서빙고 분실이라는 데를 구경하게 되었다. 그때 이후 두환은 자신이 사상범이란 자의식을 갖게 되었다.

<글: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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