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해도 너무한 약값 폭리

  • 입력 1998년 11월 25일 19시 17분


시중 약국들이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한 시민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약국들은 공급가에 비해 평균 3배나 비싼 값으로 소비자에게 약을 팔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약은 80원에 공급받아 1천원에 팔고 있다니 이건 해도 너무 한다. 무엇보다 약국 이용자인 국민, 특히 서민들을 ‘봉’으로 삼았다는 데서 배신감마저 느낀다.

시중 약국들의 이같은 폭리는 얼마 전 문제가 된 병의원 보험약값 바가지와 마찬가지로 잘못된 약값 결정 메커니즘에서 비롯되고 있다. 보험약가와 표준소매가격을 심의 결정하는 약가심사위원회와 전문위원회는 제약협회 산하기관이며 소비자단체대표 1명을 빼고는 모두 약사와 제약업자들로 구성돼 있다. 한마디로 제약회사들 맘대로 약값을 부풀려 책정할 수 있게 돼 있는 것이다.

제약회사들과 약국들의 철저한 장삿속도 문제다. 아무리 장사라지만 의약품제조 및 판매는 다른 상품과는 다르며 또 달라야 한다. 약사와 제약업자는 최소한 국민보건을 지킨다는 윤리적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제약회사는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돼 있는 약가책정제도를 악용해 실제 약국에 공급하는 가격보다 몇배씩 비싸게 부풀려 소비자가격을 매겼고 시중 약국은 싸게 사들인 약을 부풀린 소비자가격대로 파는 방법으로 폭리를 취해왔다.

현행 약사법도 문제다. 시중 약국들이 부풀려 매긴 공장도가격보다 약을 싸게 팔면 영업정지 등의 엄한 제재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중 약국이 약을 싸게 팔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감독기관인 보건복지부의 직무유기다. 보건복지부는 약값 책정과정에 개입해 약값을 조정할 수 있는데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동안 몸을 사려왔다. 지난 3년간 6천여건의 약값 책정에서 보건복지부가 가격에 문제가 있다고 제약협회측에 통보한 것은 단 43건에 불과했다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결국 ‘약값 바가지’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보건복지부에 있다. 보건복지부는 문제가 되자 뒤늦게 의약품 판매가격을 내리도록 조치하고 실태조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왜 그동안 잘못된 약가책정제도와 약사법을 방치해왔는지, 또 시중 약국들의 폭리를 뻔히 알면서도 왜 모른체 해왔는지를 스스로 밝히는 일이다. 관계공무원들과 업계의 유착이 없이 이런 일들이 가능하리라고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수사당국이 나서서라도 이런 의혹들을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 그래야 약값바가지 재발을 막고 오랫동안 ‘봉’노릇을 해온 국민을 위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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