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스탠더드 라이프]흩어앉아있어도 순서지키기 철저

  • 입력 1998년 11월 24일 19시 49분


90년 11월초의 일. 파리에 갓 도착한 유학생이었던 나는 전화를 신청하기 위해 ‘프랑스텔레콤’에 찾아갔다. 바스티유 오페라 옆에 있는 12구 전화국이었다.

민원실에는 여러 사람이 의자에 앉아 있었고 창구에는 단 한사람만이 서있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뒤에 줄을 섰다.

앞사람의 상담이 끝났을 때 의자에 앉아있던 한 여성이 말을 걸어왔다. ‘내가 더 먼저 왔는데요’ 어쩌구 하는 말이었는데 다 알아듣지 못한채 얼떨결에 순서를 내주었다. 어색한 기분도 잠시. 그 여성의 상담이 끝난 후 똑같은 일이 다시 일어났다. 그제서야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도 순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분, 프랑스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순서 기다리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사과드립니다.”

이렇게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어야 옳았겠지만 그때 프랑스어 실력이 모자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일을 겪고난 뒤 전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프랑스 사람들의 줄서기 방법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공중 화장실에서 그들은 칸 바로 앞에 줄을 서지 않고 입구에 서있다가 어느 칸이 비든 먼저 온 순서대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공중전화나 은행 식당 심지어 가스공사 민원실에서도 이 도착순서가 지켜지고 있었다. 공공장소에서 자기보다 앞서 도착한 사람이 누구인지 살펴보는 것은 습관 이전에 의무였다.

그 의무에 익숙해지면서 줄을 설 때 어느 줄에 서야 빠른지 살펴보는 것이 얼마나 유치한 행동인지 깨닫게 되었다. 요즘은 “순서를 바로 지키지 않는 것은 남의 시간과 기회를 훔치는 것” “빠른 줄을 찾는 것은 그 작은 도둑질을 위한 탐색행위”라고 아이에게 가르친다.

우광혁(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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