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이너 리그 (32)

  • 입력 1998년 11월 24일 19시 04분


반정⑨

두환과 소희가 꼬치집을 연 것은 겨우 두 달 전 일이었다. 장사는 꽤 잘 되었다. 처음에 손님들은 두환과 소희를 부부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디로 보나 별당아씨와 행랑아범 정도로 보였다.

부부라는 걸 알자 두환에게 감탄을 보내는 손님들이 많았다. 분명히 뭔가 다른 방면에 능력이 있는 거야, 라고 자기들끼리 수군댔다. 그것이 두환은 그리 싫지 않았다. 두환은 소희에게 수백 번 되풀이했던 맹세를 얼마 전에 또 했다. 이제 다시는 고생 안 시킬게. 그리고 매우 파격적인 방식으로 그 맹세를 지켰다. 죽여버린 것이다.

그 대목에서 두환은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소희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며 뻣뻣한 머리카락을 쥐어뜯기도 했다.

우리 셋은 착잡한 마음으로 그런 두환을 바라보았다. 두환이 딱해서는 아니었다. 그만하면 두환의 인생은 생긴 대로 살아온 거였다. 솔직히 말해 우리의 마음 속에는 두환이 만만찮게 뻔뻔스럽구나 하는 생각조차 있었다.

두환은 첫날밤에 예쁜 색시를 물어갔다가 세월이 지난 후 다시 나타난 호랑이 같았다. 색시를 다 먹어치웠다면서 ‘참 맛있었는데, 아깝게 됐어’하며 슬퍼하는 격이었다.

소주를 입안에 털어넣으며 두환은 탄식처럼 중얼거렸다.

―이놈의 나라에서는 되는 일이 없어. 진작에 사우디라도 가는 건데.

그 옛날 펜팔부의 상징적 존재답게 두환 역시 외국 진출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외국 현장에서 일한다는 것이 꿈같은 일만도 아니었다. 14킬로미터나 되는 말레이시아 페낭교,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 산업항, 사막을 가로질러 3천6백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에 지름 4미터짜리 송수관을 묻는 리비아 대수로 공사 등 최대와 최고를 좋아하는 한국은 세계 곳곳에서 배포를 자랑하고 있었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무모함과 기상천외한 아이디어 덕분이기도 했다. 열흘 걸린다는 선적 순서를 기다리지 못한 한국 사람은 배에 불을 질러서 위급상황을 연출해 수많은 외국 배를 제치고 먼저 항구에 물건을 내려놓기도 했다. ‘신화’니 ‘기적’이니 하는 말도 따지고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란 뜻이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입지전과 무용담은 조국이 특히 즐기는 화제였다.

―왜 안 갔어?

조국의 물음에 두환은 세상이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세상이? 왜?

두환은 긴 한숨까지 내쉬었다. 자기 장두환이야말로 격동의 80년대를 온몸으로 통과해온 인물이라는 거였다.

어쩌면 그렇게 소식두절이었냐고 승주가 물었을 때에도 두환은 뜻밖에 깊은 감회가 어린 표정을 지었다. 두환은 담배에 불을 붙여 연기를 길게 한번 내뿜었다. 그러고도 뜸을 조금 들이는 품이 아무래도 긴 이야기를 시작할 조짐이었다. 이윽고 그가 입을 뗐다.

―너희들은 신문도 안 보냐? 내 소식은 신문에도 세 번이나 났는데.

그 이야기는 군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글: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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