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예산심의 졸속없게

  • 입력 1998년 11월 23일 19시 14분


국회 예결위가 내년도 예산안 심의에 들어갔다. 정쟁과 국회공전으로 예결위 가동도 예년보다 늦어졌다. 내달 2일까지 85조7천9백억원 규모의 예산안을 처리하려면 시일이 촉박하다. 예산안 심의가 졸속으로 이루어질 우려도 그만큼 크다. 게다가 내달 8일 시작될 경제청문회와 여러 정치쟁점으로 정국이 뒤숭숭하다. 예산안 심의과정에 정치공방까지 끼여든다면 더욱 큰일이다. 예결위는 정치적 시비를 자제하고 예산안을 충실히 심의해야 한다.

내년 예산의 짜임새와 쓰임새는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를 얼마나 빨리, 그리고 덜 고통스럽게 극복하느냐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예산을 써야 할 곳은 많다. 다수 국민은 더 어려워지는 살림살이에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예산안이 어느 때보다도 엄정하게 심의돼야 할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런데도 일부 의원들이 상임위에서 지역구사업 예산을 담합해 늘렸다니 어이가 없다. 앞으로 예결위에서도 비슷한 작태가 나오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예결위 의원들은 털끝만큼이라도 그런 발상을 가져서는 안된다. 내년 예산의 중요성을 명심해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심의에 임하기 바란다.

내년에도 정부지출 확대는 불가피하다. 예산안도 22조1천억원 적자로 편성됐다. 그러나 적자재정이 불가피하다고 해서 적자규모가 방만해도 좋은 것은 아니다. 13조5천억원의 국채를 추가발행한다지만 세입은 결국 감봉이나 실직에 허덕이는 납세자들이 부담하게 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그러잖아도 IMF체제 이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어렵더라도 이것을 어떻게 완화할 것인가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세출에서는 기업구조조정 사회간접자본투자 실업대책 중소기업안정 내수진작 등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우선순위와 소요액을 따져 적정예산을 배정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특히 실직자 생계보조가 소기의 효과를 내고 있으며 공공근로사업이 충분한 사업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차제에 재점검해야 한다. 구조조정 지원예산이 퇴출돼야 할 기업이나 업종에 돌아가는 일은 없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빠듯한 예산이 헛되게 쓰인대서야 말이 되지 않는다.

정부가 추진하는 제2건국위 지원예산이 이번 심의의 최대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야당은 법적 근거와 정치적 의도가 석연찮다고 주장하며 관련예산을 모두 삭감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정부는 야당이 제기하는 의구심을 남김없이 풀어야 한다. 그런 국민운동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각 부문이 고통을 분담하는 지금은 예산지원을 최소화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관변단체 지원도 줄여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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