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실상사]「상처」보듬는 여유-깨달음 『철철』

  • 입력 1998년 11월 18일 19시 30분


손 닿는 것 모두 불태울것 같았던 열정의 20대. 데모와 휴교를 반복하던 캠퍼스와 실연의 상처를 뒤로하고 쫓기듯 내려온 지리산. 그리고 미친듯 산을 헤집고 다니다 사흘만에 남원 땅에 닿아 문득 대면한 실상사.

이제 중년이 되어 나(49·김준수)는 다시 실상사를 찾았다. 가을걷이가 끝난 휑한 들판 한가운데 고향집처럼 아담하게 들어 앉은 모습은 그때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신라 구산선문의 하나로 천년 역사를 간직한 고찰. 그러면서도 자랑하거나 내세우지 않는 진중함, 누구라도 품에 안을듯한 넉넉하고 평온하며 절제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가람배치. 일주문을 들어서는 순간 나는 도시의 아귀다툼에서 해방되는 자유로움을 느꼈다.

살짝 들여다본 주지스님방. “어서 들어오라”며 손짓하는 도법스님의 얼굴이 반갑다.

“이제는 한고비 숨을 돌릴 때입니다. 일하는 것만큼 쉬는 것도 중요합니다. 다시 뛰자고 하지만 뛸 힘이 없어요. 쉬면서 곰곰히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되짚어 나가야 합니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법문에 머리가 환해지는듯 했다.

“싸워 이기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함께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60달러였던 보릿고개 시절보다 1백배나 더 벌지만 우리가 그만큼 만족하고 행복해졌나요”?

문득 미친듯 앞만 보고 달려 온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갔다. 25년째 샐러리맨 생활. 번듯한 직장에 아들 둘을 둔 가장으로 남부러울 것 없는 일상. 그러나 하루하루 등이 시릴만큼 불안하고 허전한 것은 왜일까.

두달전, 가족처럼 지내던 직원들을 내 손으로 10명이나 ‘잘랐다’. 정작 내 자리조차도 지킬 힘도 없이 웃사람 눈치보랴 아랫사람 비위맞추랴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스님의 법문을 들으니 회한이 겹친다.

저녁 공양시간이 왔다. 화학조미료를 치지 않아 담백한 나물에 김치, 찰진 콩밥이 술술 넘어간다. 맞은편 테이블에 앉은 장정들 10여명이 눈에 띈다. 이곳 실상사의 귀농학교에 참가중인 도시 청년들이다. 공양후 그들이 머무는 간이 막사로 자리를 옮겨 신김치에 막걸리 사발을 기울이며 밤 깊은줄 모르게 이야기를 나눴다.

중소기업을 운영했던 젊은 사장, 회사부도로 실직한 30대, 하루아침에 해고라는 날벼락을 맞은 40대 가장등 모두들 한아름씩 상처를 끌어안고 이 곳에 내려와 농사일을 배우고 있었다.

“차라리 ‘짤리길’잘했어요. 돌이켜보면 지옥 같은 생활이었지요. 경쟁과 질시, 남을 짓밟지 않으면 올라설 수 없는 도시생활에 신물이 납니다”

“늘 다른 사람에게 이끌려 산다고 생각했지요. 이제 나 스스로 삶을 개척해 보고 싶어요”

“도시에서 넥타이매고 한가지 일밖에 할 수 없었던 내가 자고나면 다른 일을 배우니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요”

그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저 치열한 삶의 언어들. 나 역시 에너지가 솟는다.

멀리서 새벽을 깨우는 목탁소리가 들린다. 신선한 새벽공기와 깜깜한 하늘. 이토록 많은 별을 보기는 또 얼마만인가.

〈동행취재〓허문명기자〉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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