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이너 리그(7)

  • 입력 1998년 10월 27일 19시 29분


숙부인 ⑤

그날 이후 우리 셋 사이에는 한동안 의미심장한 긴장과 견제가 감돌았다. 왜냐하면 모두 다 같은 것을 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의견일치를 보자마자 쟁탈전이 시작되는 아주 흔한 경우였다.

―소희는 원래 내 동창이야.”

나는 기득권을 주장했다.

―내 이상형이라니까. 어떻게 되나 너희들은 두고 보기나 해.”

조국은 내심 ‘용감한 자만이 미인을 차지한다’는 말을 굳게 믿고 있었다.

승주는 여유있는 코웃음을 칠 뿐이었는데 그때마다 가을 햇살 같은 특유의 눈웃음이 딸려나왔다. 그것을 보니 이건 이길 수 없는 게임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승산 없는 일을 붙들고 늘어지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며 뒤로 물러나야 했다.

조국도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승주가 너무 진지하게 나왔던 것이다. ‘너야 발에 차이는 게 계집애들이잖아’라는 조국에게 승주는 ‘계집애는 무슨, 돌멩이였지. 소희는 지금까지 만났던 어떤 여자애와도 다른 특별한 존재란 말야’하며 절대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조국은 ‘있는 놈들이 더해’하는 눈길로 승주를 한 번 노려보았다. ‘구원의 여인’ 운운하며 징징대는 승주에게 ‘일 원이 모자라 십 원짜리도 못 되는 여인 말이냐?’라고 비아냥댄 다음, 승주의 운동화 바로 옆에 침을 찍 뱉음으로써 항복을 선언했다.

승주와 소희가 빠른 속도로 가까워진 것은 정해진 순서였다. 승주는 그 일을 신나게 떠들어댔다.

빵집에서 만났을 때는 분홍색 스웨터를 입고 나왔고, 백일장 대회가 열렸던 그 공원에는 자전거를 타고 왔더라고 했다.

떨떠름했던지 아니면 아쉬웠던지 조국은 이따금 승주를 약올렸다.

―운명적 사랑 좋아하네. 딸딸이할 때 그림이 좀 잘 잡히는 거지.

승주가 화를 냈다. 조국은 사과의 뜻으로 이렇게 말했다.

―내 원, 더러워서. 걔가 무슨 정경부인이라도 되냐?

―정경부인이 아니라 숙부인이다! 정신 좀 차려, 임마!

‘조침문’인지 ‘한중록’인지를 강독하던 고전선생이 다가와서 그 둘의 머리통을 책으로 갈기며 내지르는 소리였다.

무슨 팔자인지 나는 또 승주의 편지를 대필하는 신세가 되었다. 소희가 승주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어볼 권한이 주어졌다. 소희의 편지는 짧고 단정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주체할 수 없는 뜨거움이 역류하고 있었다.

소희는 제 방 책상에 앉아 시집을 읽고, 그것이 싫증나면 피아노를 치다가 불현듯 열린 창문으로 별을 올려다보며 두 손으로 제 가슴을 꼬옥 끌어안는 그런 소희만은 아니었다.

이따금 나는 깊은 밤 무거운 머리를 창유리에 기대고 서서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어딘가에 나처럼 잠들지 못하는 사람의 방에서 불빛이 새어나왔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곤 했다.

<글: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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