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은행 바로세우기

  • 입력 1998년 10월 11일 19시 08분


금융권 구조조정이 한창인 가운데 퇴출은행의 전직 임원들이 불법대출 등과 관련, 무더기로 검찰에 고발된다. 또 부실은행을 인수한 새 은행들이 퇴출은행의 청탁성 대출금에 대해 회수를 추진중이다. 우리나라 은행사에서 좀체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 시대 잘못됐던 금융관행을 타파하기 위한 조치로 평가할 수 있다.

금융감독위원회와 은행감독원이 경기 충청 동남 대동 동화은행 등 5개 퇴출은행의 경영진을 검찰에 고발키로 한 것은 대출과정에서의 불미스런 거래가 밝혀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은행 대출이 해당기업의 사업성이나 신용평가를 기준으로 하기보다 이른바 대출 커미션에 의해 결정됐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일부 전직경영진의 재산이 재임중 크게 불었다는 조사결과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개인이 재미를 보는 가운데 주인없는 은행만 멍드는 일이 반복되면 안된다.

그러나 은행의 부실화 책임이 전적으로 이들 경영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수은행들의 퇴출은행 실사결과가 그 증거다. 짐작은 했었지만 정치권 등 외부청탁에 의해 이뤄진 대출이 상상을 초월한 규모라니 은행의 자율성은 애시당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정치권의 압력으로 도저히 대출을 받을 수 없는 기업들에 은행돈이 나가는 사이 얼마나 많은 건전기업들이 애타게 은행문을 두드리다 쓰러져야 했을까. 차별대우 속에 사라졌을 많은 중소기업들을 생각하면 나라 경제가 이 모양이 된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느낌이다. 부당대출금 회수도 중요하지만 대출압력을 가한 권력자들도 어떤 형태로든 공개하고 문책해야 한다.

어차피 돈의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우리나라에서 한정된 재원을 놓고 벌이는 자금유치 경쟁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은행의 대출이 배후권력의 크기나 정실에 의해 좌우된다면 그 결과는 은행 기업 국민 모두에 불행할 뿐이다. 은행의 부실채권 정리에 퍼부어지는 막대한 규모의 국민부담이 그것을 말해준다. 은행의 자금지원은 기회균등과 공정경쟁의 원칙 속에 이뤄져야 마땅하다.

값비싼 대가를 치른 이상 이제부터라도 은행경영의 자율성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관치금융의 타성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는 은행쪽 주장이다. 금융개혁 과정에서 정부가 은행에 대한 출자규모를 확대키로 한 것은 불가피하지만 새로운 관치금융의 가능성에 대한 대비도 요구된다. 과거의 악습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정치권이 은행에 대한 간여를 자제하고 은행이 책임경영을 다짐해야 한다. 또 권력이나 정실에 의존해온 기업인들의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 그것 없이 은행은 바로세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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