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안영섭/때가 어느땐데 소모적 경쟁인가

  • 입력 1998년 10월 8일 19시 04분


한국의 정치권은 6·25이후 최대국난이라는 국제통화기금체제하에서도 민생은 도외시한 채 구태의연한 소모적인 정쟁만 되풀이하고 있다. 국세청모금사건에 이어 불거진 판문점 총격요청사건 등을 둘러싸고 여야는 생사를 걸다시피한 정쟁을 계속하고 있다.

수사는 사정당국에 맡기고 국회에서 여야간에 쟁점이 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난상토론을 벌이는 것이 정상일텐데도 정기국회는 여당 단독운영의 파행상태다. 제기능을 하지 못한 채 이전투구만 계속하고 있는 정치권의 이같은 작태는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혐오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지금 우리 정치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냉철한 역사인식이다.

▼ 6·25이후 최대 국난 ▼

IMF시대로 상징되는 오늘의 국난은 우리 현대사에서 세번째의 것이다. 첫째는 일본이 이 나라의 통치권을 침탈한 한일합방이며 둘째는 6·25전쟁이다.

한일합방은 물론 일제의 식민정책의 결과였지만 온전히 나라를 이끌 능력을 갖지 못한 당시 이 나라 지도층이 자초한 불행이었다고 할 수있다. 첫째는 분열이었다. 조선왕조 5백19년 중 무려 3백40년 동안 계속된 붕당간의 극렬한 갈등은 다른 나라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영조와 정조는 탕평책으로 당쟁의 해악을 극복하려 했고 실학을 중시해 서양의 과학기술도입과 국가경영혁신 등을 꾀했으나 근본적인 제도개혁을 이루지 못했고 정조가 죽은 후에 정약용(丁若鏞)등 실학파도 거세됐다.

한일합방이전에는 대원군과 민씨일파가 외세마저 개입시키는 피비린내나는 권력투쟁을 벌였고 개화파와 수구파가 극한 대립을 하면서 국정은 대혼란에 빠졌다. 부질없는 정쟁은 외세간섭, 민생도탄, 국민간의 반목, 인재등용의 봉쇄 등 수많은 해악을 초래했다.

둘째는 부패였다. 예를 들면 국가지도층의 부패가 직접 원인이 돼 1882년에 일어난 임오군란을 계기로 우리 내정에 대한 청나라와 일본의 침투가 가속됐다. 1894년에 터진 동학농민운동도 권력투쟁의 극심한 부패가 주원인이었으며 이를 진압하기 위해 청군의 지원을 요청한 것이 청일전쟁의 도화선이 됐다. 그 후 노일전쟁에서도 승리한 일본은 을사보호조약을 강요해 한국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셋째는 국제질서 변화에 대한 대응력 부족이었다. 일찍이 서구의 발전을 현실로 인정한 일본은 1854년 미국에 개항하고 국가위기를 더욱 절감하면서 메이지(明治)유신을 완수해 근대화를 급속히 추진했다. 우리도 1876년 일본과의 불평등한 수교에 앞서 쇄국정책을 버리고 서구와 보다 일찍 통상 경쟁을 하면서 근대화를 앞당겼어야 했다. 그러나 실학과 개화사상 같은 우리의 근대화 저력은 이를 실제 국가역량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소명의식과 응집력을 갖춘 국가지도층의 부재로 꽃피우지 못했다.

6·25전쟁 때의 상황도 한일합방 무렵과 유사했다. 일제식민통치의 치욕을 망각한 듯 국가지도층은 해방직후 여러 파로 갈려 대립했고 통일정부수립을 위해 노력했던 김구(金九) 등은 암살됐다. 그래서 국운은 외세에 의해 계속 유린됐다. 이승만(李承晩)정권은 김일성(金日成)정권과 중국 소련 등의 공산주의 세력의 위협에 대한 대비가 전연 없었고 전쟁의 와중에서도 반공정서를 이용해 독재체제의 구축을 준비하는 등 지도층은 분열과 부패의 길로 치달았다.

수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환란의 씨앗도 이때부터 뿌려지고 있었다고 해야할 것이다. 군사정권의 장기독재후 민주화과정에 들어섰으나 이념과 정책의 정체성을 결여한 보스와 지역 중심의 정당 아닌 붕당들이 조선시대와 유사한 정쟁을 계속해 왔다. 근래 한국 정당들이 손잡았다 헤어지고 다시 손잡고 가지치며 이름을 바꾼 횟수는 기네스 북에 올라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 또한 부패했다. 그들이 임오군란과 동학혁명때의 부패한 권력자들과 무엇이 다른가.

▼ 정치권 제도개혁 급해 ▼

국가지도층의 핵심인 정치지도층의 분열 부패는 사회통합의 와해와 불공정한 규칙의 확산을 가져왔다. 그들의 분열 부패가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파괴하고 마침내는 환란을 가져온 주요 독소였다. 분열과 부패로 점철된 우리 현대 정치사의 악순환은 이제 끝나야 한다. 차제에 국민 전반이 납득할 수 있게 성역 예외 타협없는 공정한 부정부패척결과 고비용정치구조를 청산할 제도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국난의 와중에 빠져있는 오늘, 우리 정치인들은 정쟁을 하루 속히 종식시키고 국난극복의 자세를 새롭게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안영섭<명지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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