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치매, 남의 일 아니다

  • 입력 1998년 9월 20일 19시 29분


오늘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세계 치매의 날’이다. 치매는 흔히 우리가 ‘노망’으로 부르는 노인들의 불치병이다. WHO가 지난 94년 치매를 특별히 지목해 경계하고 나선 이유는 전 세계적으로 노령인구 증가와 함께 치매환자가 급증하고 있는데도 아직 이 병에 대한 확실한 치료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령인구 증가로 치매에 걸리는 노인 수가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작년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전체 인구의 6.3%, 이 중 치매에 걸린 노인은 8.3%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현재 3백만명에 달하는 노인인구 중 약 25만명 정도가 치매환자라는 이야기다. 문제는 우리도 미국이나 일본처럼 곧 고령화사회로 진입하면서 치매환자가 급증할 것이란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노인이 치매에 걸리는 이른바 치매율이 97년 8.3%에서 2010년 8.6%, 2020년 9%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가 서둘러 대책을 강구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치매에 걸린 환자는 기억력상실, 언어장애, 시간 공간개념 상실, 대소변 가리지 못하기 등의 각종 증상으로 급속히 황폐화된다. 그러나 치매가 더욱 무서운 것은 치매환자로 인해 가족관계가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치매환자가 보이는 각종 증상은 배우자나 가족들이 장기간 돌보거나 수발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거기다가 병원에 입원시킬 경우 경비부담이 엄청나다. 가족들이 겪게 되는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이다. 치매는 단순히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 가정을 황폐화시킬 수 있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지 오래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치매를 ‘각 가정의 문제’로만 보는 경향이 많다. 최근 종교단체나 사회복지법인들이 노인보호센터를 운영하는 등 치매환자와 그 가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으나 치매환자를 위한 각종 시설은 환자 수에 비하면 태부족이다.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시 도립치매요양병원건립 지원사업을 선정해놓고 있으나 국가적 차원에서의 본격적인 대책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래서는 복지사회 운운할 수 없다.

정부는 현재 전국의 최소한 25만 가정이 치매환자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 가볍게 봐서는 안된다. 평생 일하며 세금내다가 나이 들어 치매에 걸린 노인들이 사는 날까지 보다 건강하고 인간적인 품위를 지킬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우리 모두의 도리이며 나라의 책임일 것이다. 늙은 부모가 치매에 걸려 온 가족이 알게 모르게 겪고 있는 주변의 고통을 결코 남의 일로 볼 수 없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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