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맥 못쓰는 공권력

  • 입력 1998년 9월 10일 19시 40분


폐기물 불법매립 여부를 확인하러 일반폐기물 재생업체에 나갔던 환경부와 군청 공무원들이 업체직원들의 저지로 현장접근도 하지 못한 채 쫓겨났다고 한다. 나중에는 경찰관까지 출동했으나 업체측이 굴착기를 동원해 막는 바람에 4시간만에 맥없이 물러났다는 보도다. 기가 막히는 일이다.

공권력을 얕보거나 공권력에 도전하는 풍조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파출소에서 툭하면 난동을 부리고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돼도 항거하기가 일쑤다. 각종 시위현장에서는 공권력을 무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맞대놓고 대항하기도 한다. 공권력이 우리처럼 공공연하게 도전받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공권력에 대한 도전은 법과 법치를 거부하는 것과 같다. 나라 꼴이 이래서는 안된다.

더욱 한심한 것은 업체가 막는다고 그냥 물러선 공무원과 경찰관이다. 그렇게 물러날 일이라면 애초부터 출동하지 말았어야 했다. 현장확인을 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면 그냥 무기력하게 물러설 일이 아니다. 경찰력을 대거 증원해서라도 관련자를 모두 체포하고 공무를 엄정하게 수행함으로써 공권력의 권위를 세웠어야 했다.

얼마 전 환경부가 주최하려다 무산된 팔당호수질개선공청회 때도 수많은 경찰력이 출동했으나 주민들의 물리적 힘에 눌려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공권력이 이렇게 무력하니 우습게 보는 것이다.

이 참에 공권력이 도전받는 배경에 대해서도 철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의 공권력은 남용되기 다반사였다. 그러다보니 ‘공권력의 횡포’라는 말까지 흔히 쓰이는 사회가 됐다. 공권력의 권위는 엄정한 법 집행으로 생기는데 그동안 우리는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는 사례를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힘있는 사람은 봐주고 힘없는 서민들에게는 엄격하게 적용되는가 하면 정치논리 앞에서 법과 공권력이 마구 춤을 추는 경우도 비일비재였다. 엄연한 법을 두고도 ‘정서(情緖)’ 운운하며 법 집행을 하지 않는다면 공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생길 수 없다.

공권력은 윤리적으로도 당당해야 권위가 선다. 각종 단속업무 등에 돈을 받고 봐주는 등의 공무원과 경찰관 비리가 있는 한 공권력의 권위는 바로 서기 어렵다. 재량권을 주지 않고 책임만 따지는 지휘통솔체계도 문제다. 일선 경찰관이나 공무원들은 그저 말썽없이 일을 처리하는 것을 제일로 친다. 그러니 공권력이 위축되고 범법자에게 얕보이는 것이다.

정부는 공권력의 권위회복에 힘을 쏟아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위기로 사회적 불안심리가 커지고 있는 판에 ‘맥못쓰는 공권력’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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