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클래식거장 23인의 삶더듬기 「전설속의 거장」

  • 입력 1998년 8월 24일 19시 22분


토스카니니와 푸르트뱅글러, 그리고 카라얀.

반파시스트, 반나치주의자였던 아르투로 코스카니니. 그는 평생 타협을 몰랐다. 무솔리니 정권이 파시스트 당가(黨歌)를 연주해달라고 하자 ‘이따위는 음악이라고 할 수 없다’고 잘랐다.

독일에서의 공연도 거부했다. 나치가 유태인을 박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1938년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탄호이저’ 공연을 준비하던 그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합병 소식을 듣고 불같이 화를 냈다. 분을 못이긴 그는 연습을 하다말고 지휘대에서 내려와 대기실 책상을 걷어차고 악보를 내팽개쳤다.

낭만주의자였던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그는 히틀러를 싫어했다. 그는 나치의 간섭에 줄곧 저항하며 버텼다. 하지만 전시에도 독일에 남아 음악을 계속했던 그는 이런저런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전범법정에 섰을 때 증인들은 말했다.“제3제국 지배하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가르쳐준 사람은 오직 한 사람 푸르트뱅글러였다. 그의 연주회가 있는 한 절망할 수 없었다.”

연합군의 폭격으로 집이 불타버린 베를린의 시민들은 그의 연주회장을 찾으며 말했다.

“지금 푸르트뱅글러의 음악을 듣는 것 외에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1933년 그는 나치에 입당했다. 지휘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첫번째 아내와도 이혼했다. 아내의 몸 속에는 유태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라얀은 현대가 요구하는 모든 덕목을 갖추었다. 신기술에 대한 흡인력, 정치적 유연성, 권위와 자기선전, 대중성, 사업적인 감각…. 70년대에 더 이상 평정할 분야를 찾지못하던 그는 수익사업에 주력했다. 그가 죽은 뒤 두 딸과 아내에게 남긴 유산은 1천7백50억원.

그가 떠난뒤 사람들은 말한다.“나로서는 카라얀에게 반대하는 게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만일 음악이 카라얀이 생각한대로 흘러간다면 음악은 끝날 것이다…”(브루노 마데르나).

“카라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겨운 사람이지. 음악을 들을 줄 아는 귀가 없는 사람이야. 뛰어난 장사꾼이긴 하지만.”

“그렇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름인데요.”

“그건 코카콜라도 마찬가지 아닌가….”(첼리비다케와 슈피겔지의 인터뷰)

황금가지에서 펴낸 ‘전설 속의 거장’.

20세기를 매혹시킨 클래식의 거장, 스물세 명의 음악과 생애를 더듬으며 이 궁핍한 시대에 예술이란 또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스피노자를 공부하다 음반계에 뛰어든 조희창씨. 그에게선 매니아의 열정이 넘친다.

스피드와 테크닉의 발전을 음악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음악이 주는 여백과 느림의 깊이는 외려, 현대에 들어 퇴보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책을 집필하게 됐다고. 각 장마다 수록된 ‘명연주 명음반’은 그 자체가 별책. 조희창 지음.

〈이기우기자〉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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