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박경리/한밤의 장대비 소리

  • 입력 1998년 8월 10일 10시 13분


한밤중.

촛불을 켜 놓고 장대같이 내리꽂히는 빗소리를 듣는다.

방안을 훤하게 비춰주는 섬광에 이어 뇌성은 천하를 흔들고 거위가 소리를 지르곤 한다.

이 무슨 재앙일까. 두렵기도 하지만 인간이 한낱 미물같아서 슬프다.

화면에서 본 이재민들의 무표정한 모습은 통곡보다 참혹했다.

체념한 때문일까. 희망을 버린 때문일까.

타들어가는 촛불을 쳐다보며 버림받은 기분이 된다.

왜 버림받은 기분이 될까.

아마도 그것은 일종의 자괴감 때문은 아닐까.

IMF가 우리에게 왔을 때 그것은 마치 유령과도 같았다.

날이면 날마다 텔레비전에 나타난 전문가들은 우리가 납득할 수 있게 열심히 설명을 했으나 그것은 수치적인 것으로, 생명들 생존을 위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경우는 없었다.

해서 수치 그 자체가 유령만같이 생각되었는지 모른다.

‘난부자 든거지’ ‘권도(權道)살림’이라는 말이 있다. ‘난부자 든거지’는 화려하고 잘 사는 것 같은 겉과는 달리 속으로는 빚투성이로 쪼들린다는 뜻이며 권도살림이란 밑돌 뽑아 윗돌 고이고 윗돌 뽑아 밑돌 고이는, 그러니까 둘러 맞추어가며 하는 살림을 뜻하는데 그말에는 다 같이 비아냥거림이 숨어있다.

옛날 우리네 어머니들이 강한 비판과 부정을 품고 내뱉은 말들이다.

사실 신물나는 경제얘기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외국에서 돈을 더 빌려온다고 권도살림이 끝날 것인지 의심스럽고 생산을 독려한다 하더라도 세계의 시장은 무한한 것도 아니다.

그러면 우리들 인류가 살아남을 길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단순명료하다. 먹을 것, 입을 것, 눈비 가릴 주거의 확보. 이같이 생존을 위한 기본만 보장이 된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

그 기본을 보장하는 것이 지구라는 터전이며 땅이다.

우리는 지구를, 땅을 얼마나 생각했을까. 진실로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생태계를 얼마나 생각했을까.

지폐보다, 황금보다 우리의 생존을 떠받쳐주는 것은 바로 터전인 것이다.

먹을 것도 거기서 나고 입을 것도 거기서 나고 집도 터전 위에 세운다. 무엇이 먼저이며 나중인지 사람들은 그것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기본은 줄어들고 상처받으며 훼손되고 생존의 방식보다 생활양식이 우선되어 쓰레기만 쌓이는 세상. 시장이나 상점을 상상해보면 알 것이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물자는 한정되어 있다. 에너지도 한정되어 있다. 화훼농장이 늘게 되면 논이나 밭이 줄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여기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것이 인간에게 부여된 능력이다.

필요불가결한 것이 줄어들고 그렇지 못한 것이 늘어난다는 증거로 땅이 죽어가고 있는 사실, 지구가 망가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생존의 욕망이 생존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욕망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주가 존재하고 지구를 존재하게 하는 창조적 균형을 넘어서는 것은 이 세상 아무 곳에도 없다.

우리는 그것을 본으로 하여 새로운 균형, 질서를 찾지 못한다면 황금과 지폐가 난무하는 속에서 서서히 죽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는 여전히 쏟아지고 있다.

이재민들의 물에 젖은 잠자리, 꿈도 없는 캄캄한 잠결이 생각난다. 제발 비야 오늘밤으로 그쳐다오, 비는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딛는 땅이 있는 한 우리는 다시 삶을 일굴 것이며 이 재난을 통해 겸허를 배워야할 것 같고, 특히 지도층 정부 정치계 사람들, 지식인은 교만이나 인간의 우월감을 버리고 자연에 귀의하는 심정으로 삶을 심각하게 재검토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

박경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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