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인수/양심수 준법서약서 논란의 해법

  • 입력 1998년 8월 3일 19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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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사면의 폭과 기준을 둘러싸고 여러 견해가 오가고 있다.

양심수 사면과 관련해 박상천(朴相千)법무부장관은 사상전향제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비인도적이며 실효성도 없다는 법적 견해를 밝혔다(동아일보 7월31일자). 대신 법무부는 준법서약제도를 신설해 사면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애초의 정부 방침은 건국 50주년을 맞아 정치적 사유로 투옥된 인사에 대한 대폭 사면을 통해 ‘양심수 논쟁’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의지로 해석됐다.

▼ 다양한 서약방식 허용 ▼

그러나 준법서약서를 둘러싼 논란이 오가면서 정부는 준법서약서를 엄격히 적용하는 방향으로 후퇴하는 듯이 보였고, 그것은 다시 수감자와 인권단체의 태도를 경색시켰다.

대폭 사면의 해법이었던 준법서약서가 사면의 걸림돌처럼 여겨지게 된 것은 인권을 국정지표로 삼는 정부로서도 반가운 일은 분명 아닐 것이다.

이러한 교착국면을 타개할 해법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우리 헌법과 유엔인권규약의 정신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양심의 자유는 절대적 자유에 속한다. 전향 강제는 양심의 자유에 절대적으로 저촉된다.

준법서약서도, 그에 응하지 않을 경우 마치 국법질서를 준수하지 않겠다는 의사로 독해된다면 역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물론 석방이나 사면에 앞서 법을 지키겠다는 의사의 확인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방법을 ‘서약서’형태로 제도화한다면 그것은 약한 의미나마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

다만 준법서약과 전향서의 질적 차이는 분명한 만큼 준법서약서가 전향서와 다름없다는 주장 역시 지나친 비약이다.

그런 견해를 주장할수록 수감자들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어렵게 만든다는 점도 진지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준법서약서를 둘러싼 쟁점은 타협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준법의 기초를 이루는 헌법이 국민 합의에 의한 인권법이기 때문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법률이 있다 해도 그 법률을 준수하면서 법개정 노력을 펼칠 수도 있다. 때문에 준법서약을 한다고 현행 법령을 무조건 찬미하는 것으로 오도될 필요는 없다.

정부는 꼭 서약서의 방식을 고집할 일이 아니다.

다양한 방식의 의견 표명을 권장할 수 있으며 양심수와의 면담을 통해 준법 의사를 확인하는 방법도 취할 수 있다.

양심수의 입장에서는 준법서약서에 간단히 서명할 수도 있다. 아니면 서약서 작성 요구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있음을 적시(摘示)하면서 국민화해의 시대를 앞장서 연다는 견지에서 서약할 수도 있다.

즉 양심수 자신의 용기와 결단으로 정부 정책을 개혁의 방향으로 이끌어내는 전범(典範)을 제시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서약서 작성을 거부한다고 해서 곧바로 국법 질서 준수의 의사가 없는 것으로 축소 해석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작은 양심을 고수하고자 하는 행동이야말로 진정한 법질서의 소중한 초석이다.

양심수의 범주에 드는 경우라면 행형 성적 등을 참작해 준법서약 없이도 석방시키는 쪽으로 결단할 수 있다.

비전향 장기수의 경우는 달리 접근될 사안이다. 그들은 어떤 형태의 서약서 작성도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해서 사면 대상에서 제외할 일은 아니다.

그들에게 가해진 30∼40년의 초장기 구금 사실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그들의 죄목이란 것은 북한에서 남파됐다는 사실 정도다.

이런 사안은 오늘날의 법정에서는 그보다 훨씬 경미한 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고령인데다 육체적으로 피폐해 있어 재범 위험성도 없다.

▼ 장기수 인도적 고려를 ▼

초장기수의 숫자도 17명에 불과하다. 그렇게 적은 숫자 때문에 한국이 인권 후진국의 오명을 쓴다는 것도 무척 억울한 일이다.

비전향 초장기수들의 석방은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타당하다. 그들을 일단 석방한 뒤 북에 억류돼 있는 납북 어부나 국군 포로와 연계 송환하는 방안도 진지하게 검토할 수 있다.

그것은 인도주의적일 뿐만 아니라 남북화해의 초석을 놓을 수 있는 길이다.

민주주의 인도주의 남북화해의 길을 열기 위해 철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광복절이 되기를 바란다.

한인섭(서울대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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